[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나는 지금 교토다

시치고산(七五三)

나는 지금 교토다. 단풍 절정기이다. 교토라고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교토다운 그림을 볼 수 있는 시기다. 세상은 울긋불긋 많은 이야기를 담지만 시간은 천천히 긴 숨을 내쉬는 11월의 이 도시를 나는 좋아한다. 나직나직 특유의 리듬을 타고 지저귀는 듯 들리는 교토 사투리는 먼 시간 속으로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천년의 고도 교토는 번화하다. 사찰과 신사로 즐비한 골목골목에는 관광객들의 수다스러운 발걸음이 북적댄다. 그래도 드문드문 작은 가게에서는 교토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냄새가 보이니 그거 역시 반갑다.

교토에서의 즐거움은 오래된 건물 속에서 역사를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 역시 즐거움의 하나다. 교토의 시가지에서는 기모노차림의 사람들을 쉬 볼 수 있다. 관광객들 중 스튜디오에서 기모노를 빌려 입고 마치 교토를 무대로 영화를 찍는 양 활보하는 사람도 있고, 코스프레를 즐기는 젊은이도 있다. 그것 뿐이겠는가. 토박이들의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만나는 일 또한 즐겁다.

‘시치고산’의 시작

11월 15일은 시치고산(七五三)이다. 글자 그대로 7살, 5살, 3살 된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일본의 연중행사다. 아이들을 곱게 차려 입히고 신사나 절에 가서 건강하게 성장한 것을 감사하고 행복을 기원한다.

그 시작에 대해서, 도쿠가와 막부 5대 쇼군 쓰나요시(綱吉)가 병약한 장남 도쿠마쓰(?松, 1679~1683)의 건강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력한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명확하지는 않다. 음력 11월은 수확을 마치고 신에게 감사하는 달이다. 보름날 마을사람들은 수호신을 찾아 수확을 감사하고 아이의 성장을 감사하고 가호를 빈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외에도 3살이 되면 아이의 머리를 더 이상 밀지 않고 기르기 시작하는 ‘가미오키(?置)’ 의식, 5살이 된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하카마(정장바지)를 입는 ‘하카마기(袴着)’ 의식, 7살 된 여자아이가 어른과 같은 모양의 오비를 하는 ‘오비토키(?解)’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런 의식을 통해서 남아는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아는 하나의 여성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메이지 이후 음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서 양력 11월 15일이 ‘시치고산’ 날이 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13세가 되는 해 축하 행사(十三?り)를 하는 곳도 있고, 날을 달리하는 곳도 있으며 호사스럽게 피로연을 베푸는 곳도 있다. 여하튼 내 새끼 잘 자라서 고맙고, 더 잘 자라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날이다.

사실 일본도 근대이전 아이를 무탈하게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병, 영양 등의 문제로 영유아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7살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 언제라도 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그러니 죽음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7살이 된 후 비로소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되었다. ‘시치고산’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비롯된 의식이었을 것이다.

신사를 찾은 ‘시치고산’ 아이들

헤이안 신궁에서 만난 7살 여자아이. <그림=박은정>

헤이안 신궁 역시 사람들로 북적인다. 빨간 기둥 사이로 예쁜 기모노를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살짝살짝 보일 때마다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젊은 엄마 아빠의 모습도 보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귀하디귀한 내 손자 이 순간의 그림을 기억하기 위해서 카메라 셔터 누르기 바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른흉내를 내고 뽀얀 분칠을 한 여자아이는 새침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깜찍하고 자깝스럽다. 이때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아이가 보였다. 참 예쁜데, 정말 예쁘고 화사하고 좋은데 그런데… 그게 마이코(교토 게이샤 견습생) 기모노가 아닌가? 하나가 아니다. 여기도 저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모르겠다. 나라면 딴 건 몰라도 딸아이에게 마이코 옷따위는 입히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예쁘다 해도 행여 우리 딸 그런 운명 살까 보지도 못하게 할 것 같은데. 참 재미난 나라다. 설마 장래 희망이 마이코는 아닐 것일 텐데. 아무리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매춘부나 유녀(遊女)와는 구분된다 해도 기녀는 기녀인데 말이다. 어쨌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보고 나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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