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일본의 왕, 천황③
황위계승
황위는 국회에서 의결된 황실전범(皇室典範)에 따라 세습한다. 현 황실전범 제1장 제1조를 보면 ‘황위는 황통에 속하는 남계(男系)의 남자가 이것을 계승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남계의 남자’란 부계의 혈통에 따른 아들, 따라서 현재로서는 여성천황이 인정되지 않는다.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 8명의 여성천황이 있었다. 대개 황후나 황녀 중에서 선택되었는데 장기간에 걸쳐서 절대 권력자로 재위한 경우는 없었다. 직계의 아들이 성장하거나 황위계승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양위했다. 이른바 중계자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니 존재했다고 해도 ‘부계 혈통계승’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황위계승의 범위를 ‘남자’로 제한을 한 것은 메이지 이후의 일이다.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구 황실전범에 따르면 선제의 죽음과 동시에 황위계승이 이루어지는데 계승순위가 정해져있다. 천황이 지명하거나 양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을 현 황실전범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전에는 선제가 살아있는 동안 양위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계승의 순위는 천황의 장남, 이른바 황태자에서 그 아들 황손으로 이어지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만약 해당되는 이가 없으면 천황의 차남, 그리고 그 아들로 이어진다. 다음은 천황의 형제와 그 자손. 그리고 천황의 숙부와 그 자손들로 이어진다.
현 천황가의 황위계승순위
2006년 천황의 차남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가 아들 히사히토 친왕(悠仁親王)을 생산하기 전까지 황실은 41년간 아들이 없었다. 황태자는 딸 하나를 두었고, 아키시노노미야도 그때까지는 딸만 둘이었다. 천황의 동생 히타치노미야(常陸宮)도 적남이 없었다. 천황의 사촌 미카사노미야(三笠宮)와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도 딸만 생산했다. 그러니 나이 등을 감안하면 황위계승자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현 천황→황태자→아키시노노미야 이하 황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이즈미(小泉) 수상은 여성천황을 인정하자는 개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려고 했다. 2006년도의 일이다. 현 헌법상 황위계승은 국회에서 의결된 황실전범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키시노노미야가 아들을 출산하면서 이 일은 마무리되었다.
당시 내각총리대신이 주최하는 ‘황실전범에 관한 유식자 회의(有識者會議)’는 모계 여성천황도 인정하자는 주지의 보고서를 준비했다. ‘부계의 여성’이니 ‘모계의 여성’이라는 단어가 쉽게 와 닿지 않는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부계의 여성’ 왕이다. 황태자 찰스가 왕이 되면 이는 ‘모계의 남성’이 왕이 되는 셈이다. 윌리엄은 ‘부계의 남성’에 해당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에 반해 부계에 따른 계승이야말로 천황계의 전통임을 주장하면서 전후 황실에서 이탈한 11궁가의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1947년 GHQ(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의 ‘황족재산특권박탈’ 지령으로 황실재산은 국유화 되고, 궁가 운용자금의 급감에 따라 다이쇼천황의 직계만 남기고 방계의 궁가는 황적을 이탈했다. 민간인이 된 이들 중 독신남성을 황족으로 되돌리고 현 황실의 내친왕과 결혼을 시켜서 남자의 탄생을 기다리자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당시 주목을 받았고 국민적 화제가 되었다.
어느 쪽이나 중요한 사실은 황실의 존속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일본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국민통합의 구심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천황을 실질적 국가원수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일부 보수 세력의 황당한 주장을 지지하는 그런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한편 영국은 맏이가 성별과 관계없이 왕위를 승계할 수 있도록 하는 ‘왕위세습법’ 개정안이 작년 9월에 발표되고, 영연방 16개국 정상들이 이를 합의한 상태이다. 윌리엄·케이트가 딸을 먼저 낳으면 왕위는 그 맏딸이 계승하게 된다. 남동생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