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노벨상과 애국심

일본은 침몰할 것이다. 조만간 도쿄에 엄청난 지진이 온단다. 후지산이 폭발한단다. 이런저런 흉흉한 소문이 들릴 때마다 도쿄에서 멀쩡하게 직장 생활 잘 하고 있는 동생에게 귀국해야 하지 않겠냐고 종용한다.

이런 와중에 야마나카 신야(山中伸?, 1962~)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은 ‘일본은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 같았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가 일본인 첫 노벨상 수상자로 전후 피폐한 일본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에 비할 수는 없지만 경기침체의 장기화, 동일본 대지진과 잇따른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임을 나라 안팎으로 알렸다.

“나는 무명의 연구자였다. 동일본 대지진과 경제 불황 속에서 정부지원이 없었으면 연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상은 일본이 받은 것”이라는 말에 일본에 대한 믿음, 감사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에게 감사하다, ○○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는 상투적인 멘트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1970~1980년대 일본

야마나카 교수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하는 1970~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경제는 성장하고 세상은 날로 좋아진다는 믿음의 시기였다. 하버드대 명예교수 에즈라 보겔이 <일등국가 일본>을 출간하고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공업국이라고 묘사한 1979년 야마나카 교수는 아마도 고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이 무렵 나도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일본의 경제성장은 선진국 대열에서 세계를 리드했고, 사람들은 개인의 행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여유있는 교육’을 운운하면서 수업시간과 학습량을 줄이고 통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체험학습 등을 중요시했다. 국가를 위해서 훌륭한 일꾼이 되라기보다는 전인교육을 지향했다.

방과후 클럽활동은 정규수업보다 더 활발했다. 나도 책가방보다 더 큰 미술도구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녔으니 공부를 하러가는 건지 클럽활동을 하러 가는 건지 헷갈리는 날도 있었다. 야마나카 교수가 유도를 하면서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경험하고 정형외과 임상의가 되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이런 시대의 이야기다.

학교에는 국기가 걸려있지 않았다. 졸업식에서도 ‘석별의 정(Auld Lang Syne)’을 들은 기억은 있어도 ‘기미가요’ 제창 같은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감사하는 마음

도쿄의 70대 노인이 이런 말을 하는데 놀랐다. “내가 만약 복권에 당첨된다면 그 돈을 일본에 드릴 겁니다. 나의 남은 삶을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이 나라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젊은 날 열심히 일을 했고, 지금은 연금을 받으면서 혼자 살고 있는 평범한 노인이다.

사치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매달 일정한 연금을 받고, 아프면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고, 입원을 해도 간병인을 따로 둘 필요 없이 간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자식들에게 궁색한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시스템. 그가 말하는 ‘일본’이란 바로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한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 상은 일본이 받은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일본’ 역시 과학자로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수상 소감에 묻어나는 나라에 대한 사랑과 감사는 이런 시스템에 대한 그의 마음이다.

일본 역시 젊은 세대의 이공계 이탈현상이 두드러진다. 야마나카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교토대 iPS연구소도 연구비가 부족해서 직원 200여 명 중 정규직은 10%에 불과하다고 하니 일본의 연구소 역시 녹녹치 않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연구개발예산을 국내총생산의 2% 아래로 내리지 않았고, 그중 3분의 2는 반드시 기초과학분야에 투자했다는 일관성 가진 지원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애국교육

차기 총리로 지목을 받고 있는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가 애국교육을 내건 교육기본법을 발표했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기미가요 제창 시 기립 등을 의무화했다. 일본은 지금 애국주의 신드롬’에 빠져 있다. 이것은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을 동반한 자신감 속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랜 경기침체로 일본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복지, 투자가 어렵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애국교육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국심은 강조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세뇌효과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비극을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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