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여자아이의 명절 ‘히나마쓰리’
히나마쓰리
3월3일은 여자아이의 명절 ‘히나마쓰리(ひな祭り)’다. 헤이안시대 딸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히나’는 원래 옷을 입힌 인형이라는 뜻이다. 당시 나무로 만든 인형을 강물에 흘려보내면서 병이나 재앙까지도 함께 보내는 액막이 행사의 하나였는데, 지금도 ‘히나나가시(ひな流し)’라면서 이런 풍습이 남아있는 지역이 몇 군데 있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이 빨간 천을 깐 단(ひな壇) 위에 히나인형(ひな人形)을 장식하고 여자아이의 축제로 자리매김한 것은 에도시대부터의 일이다. 궁전의 여성들이 성대하게 맞이한 이 행사가 훗날 막부의 오오쿠(大?, 도쿠가와 쇼군의 처첩, 생모, 자녀 및 시녀들이 거처하던 곳)에서, 그리고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히나마쓰리’는 복숭아꽃이 피는 시기의 축제여서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도 하고, 여자아이의 축제라는 뜻으로 온나노셋쿠(女の節句)라고도 한다. 이날이 다가오면 어린 딸을 둔 집에서는 히나 인형을 장식한다. 천황과 황후의 두 개의 인형만 장식하기도 하지만, 대개 적게는 2단에서 많게는 8단까지 화려하게 장식한다. 최상단에는 천황과 황후의 인형, 그 아랫단부터는 궁녀, 궁중대신, 음악연주자, 가재도구, 우마차 등을 화려하게 배치한다. 히나 인형만이 아니라 히시모치(菱?, 떡)와 시로자케(白酒, 누룩과 술로 만든 희고 걸죽한 단술), 과자 등도 함께 단 위에 올린다. 3월3일 축제를 마치면 바로 치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딸아이의 혼사가 늦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야나가와 히나마쓰리??
후쿠오카 남부에 위치한 야나가와(柳川)는 옛 성읍을 가로지르는 수로로 유명한 도시다. 여행자를 실은 쪽배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면서 시간을 역행하고 낭만을 선사한다. 1738년 야나가와 번주(藩主) 다치바나 사다요시(立花貞?)는 가족을 위한 쉼터를 이곳에 마련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오하나(御花)’라고 불렀다. 메이지시대에는 다치바나 백작의 저택이 되었고, 14대 당주 도모하루(寬治)는 서양식과 일본식 건물을 같이 배치해서 당시 유행하는 형식의 저택으로 갖추었다. 마당에는 흑송으로 둘러싸인 연못이 있고, 대지 7천평에 이르는 오하나는 ‘다치바나 정원’으로 명명되면서 일본의 명승지로 지명되었다. 2011년의 일이다.?
2월 초, 규슈를 여행했다. 야나가와 번주 다치바나의 저택 ‘오하나’는 온통 히나마쓰리의 인형들로 가득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구석진 방 하나하나에 다양한 모양의 히나 인형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기 전 벽면에는 몇 개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다치바나 14대 집안 가족사진도 있었다. 온가족이 함께 한 사진이었지만 나에게는 할머니, 며느리, 딸들의 모습만 왜 그리도 또렷하게 기억되는지. 서양식 건물 앞에 안경 쓴 며느리의 모습에서는 메이지시대를 살아간 여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흑백사진이 가지는 묘한 이미지와 함께 히나마쓰리의 화려한 색상은 ‘오하나’를 더욱 매력적으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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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가와 히나마쓰리에는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 ‘사게몬(さげもん)’이라는 것인데, 굳이 말한다면 모빌이라고나 할까.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이 아이의 행복과 건강, 무병무탈, 좋은 혼처 등을 기원하면서 친가에서는 히나 인형, 외가에서는 사게몬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 사게몬은 할머니와 친척들이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선물하는데, 히나 단의 좌우에 장식한다. 부잣집에서는 화려하게 만들어서 손님들을 초빙해 보여주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히나 단 대신 이것만 장식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대나무로 원을 만들고 거기에 붉은색과 흰색의 천을 두른다. 그리고 7개의 줄을 늘어뜨린 다음 다양한 모양의 ‘행운을 부르는 장식품(?起物)’을 단다. 하나의 줄에 7개의 장식품을 단다고 하니, 모두 49개의 장식품을 다는 셈이다. 중앙에는 커다란 장식 공을 2개. 그러면 모두 51개가 된다. 행운을 부르는 장식품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재밌다.
· 기어가는 아이 – 태어나서 처음 기어갈 때 부모의 기쁨 |
· 복주머니 – 마음의 풍요로움 |
· 토끼 – 얌전하고, 설산(雪山)을 건강하게 뛰어다닌다 |
· 비둘기 – 행복과 평화의 심볼 |
· 병아리 – 귀엽고 천진난만 |
· 쥐 – 자식 복 |
· 대합 –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다 |
· 표주박 – 무병식재(無病息災) |
· 매화 -추위를 이기고 봄에 가장 먼저 핀다 |
· 산반소(三番?) – 축하하는 자리에서의 춤 |
<다치바나 저택의 설명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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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난 사실은 51 숫자가 상징하는 바이다. ‘인생 50년’이라는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라고 한다. ‘인생 50년’이라…. 그 참,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