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여인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에 걸친 전국난세, 천하통일을 꿈꾸는 자들의 무대 뒤에서 펼쳐지는 일본 여인들의 삶은 또 하나의 일본을 읽게 한다.

오이치

야마오카 소하치(山岡?八)의 소설 <대망>에 등장하는 오이치(お市)는 일본의 여성상으로 많은 한국 남자들의 가슴 속에 잔잔히 기억된다. 오이치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여동생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평생 바라만 보았던 인물이다. 1567년 노부나가가 오우미(近江)와 동맹을 맺기 위해서, 오이치를 영주 아사이 나가마사(?井長政)와 정략결혼 시키는데 이들은 2남3녀를 둘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

그런데 3년 후 노부나가가 아사쿠라(朝倉)를 공격하자, 오이치의 남편은 노부나가를 배반하고 아사쿠라 진영에 들어갔다. 이것을 알게 된 오이치는 오빠 노부나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콩주머니를 만들어 보낸다. 쥐눈이콩을 주머니에 넣고 사탕처럼 양끝을 묶었다. 노부나가는 이것이 ‘후쿠로노 네즈미(袋のネズミ, 주머니 속의 쥐)’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후쿠로노 네즈미’란 달아날 곳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속언이다. 즉 오다 군이 주머니 속의 콩처럼 아사쿠라와 아사이 군에 포위되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사실이건 아니건 오이치의 기지로 노부나가가 위기를 넘겼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리고 3년 후, 아사이 가는 노부나가에 의해 멸망한다. 1573년 마지막 보류였던 고다니 성(小谷城)이 무너지자 나가마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이치도 죽으려 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죽기 전 두 아들은 도망가게 했고 오이치와 세 딸은 노부나가에게 돌려보냈다. 오이치 남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노부나가는 그의 배반에 분노했고, 부하 히데요시에게 오이치의 두 아들을 찾아 죽이게 했다. 오이치와 딸들은 오다 가문의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으면서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1582년 혼노사의 변(本能寺の?)으로 노부나가가 죽자, 많은 무장들이 오이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히데요시와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가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하는데, 오이치는 조카의 뜻에 따라 역시 정치적 목적으로 가쓰이에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1583년, 남편 가쓰이에가 히데요시와 대립한 싸움에서 패하자 남편과 함께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히데요시는 오이치에게 항복하고 성을 빠져나올 것을 권유했으나, 오이치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도 히데요시는 오이치에 대한 짝사랑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훗날 바라보기만 했던 오이치의 딸 차차(茶?)를 측실로 맞이하고 아들을 얻는다.

노히메

사이토 도산(?藤道三)의 딸 노히메(濃?)가 이웃나라 오와리(尾張)의 노부나가와 결혼한 것 역시 전국시대의 정략결혼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상호간의 평화가 성립되었지만 물밑으로는 심리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심가인 도산은 딸을 스파이로 보낸 셈이다. 허나 노부나가 역시 만만치 않다. 매일 밤 모습을 감추는 노부나가를 이상하게 여긴 노히메가 그것에 대해서 묻자 “도산의 가신 중 나에게 매수된 자가 도산을 죽이면 신호를 보낸다고 해서 그것을 보러 간다”고 했다. 물론 거짓이다. 노히메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도산과 노히메는 노부나가의 책략에 말려 노부나가가 말한 가신을 죽인다. 이 일로 말미암아 노부나가는 노히메가 도산의 스파이임을 확신한다.

호소카와 가라샤

1578년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딸 가라샤(세례명, 본명은 다마)는 15살 때 노부나가의 명으로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의 처가 되는데, 다행히 이들 사이 역시 좋았다. 노부나가는, 가신들이 상호 감시하는 것으로 모반을 막고자 가신의 자녀들을 강제로 결혼시켰다. 미쓰히데는 가라샤만이 아니라 다른 딸들도 모두 노부나가의 명에 따라 시집보냈다고 하니, 노부나가에 대한 절대복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582년 아버지 미쓰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 이에 히데요시는 주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미쓰히데를 공격하는데, 호소카와는 그의 편을 들고 승리를 거둔다. 이로서 미쓰히데의 딸 가라샤는 역신의 딸로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유폐되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가라샤는 은밀하게 가톨릭 세례를 받은 뒤 절망과 괴로움을 신앙으로 구원받는 삶을 선택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새로이 등장한 지도자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와의 전쟁을 앞두고 장군들의 부인을 인질로 잡았다. 가신의 배신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가라샤의 남편 다다오키는 이미 배신하고 이에야스 편에 설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가라샤는 행여 남편에게 폐가 될까 인질이기를 거부하고 자살한다. 자살을 금한 그리스토교의 가르침에 따라 가신에게 자신을 가슴을 찌르게 했다.

그들에게 결혼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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