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일본의 왕, 천황④

<그림=박은정>

일본국헌법과 천황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일본국헌법은 1946년 11월3일에 제정되어 다음해 5월3일부터 시행되었다. 헌법은 전문(前文)과 본문 11장 103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장이 ‘천황’이다. 제1장 제1조 ‘천황은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 총의에 기초한다’ 제2조 ‘황위는 세습하는데, 국회에서 의결된 황실전범(皇室典範)의 규정에 따른다’ 제3조 ‘천황의 국사와 관련된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진다’ 제4조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천황은 국가 원수의 역할에 해당하는 국사를 담당하지만 정치적 실권이 없다. 이것이 ‘상징천황제’이다.

근대적 국가체제를 성립하기 위해서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신진 무사계층은 도쿠가와 막부타도의 명분으로 천황을 내세웠다. 즉 메이지 정부는 권력기반을 확립하기 위해서 천황의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용했다. 더 나아가 천황과 관련된 각종 의식을 통해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을 꾀하였다. 일본의 부국강병 실행을 위해서는 국민통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건국신화 속 천황의 등장을 그대로 역사로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신국(神國)이고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절대주권을 갖는 현인신(現人神)이라고 교육했다. 그리고 일본국가 및 일본민족의 근간이라고 밝혔다. 일본민족 전체는 천황을 가장으로 하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한 군집력을 모색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는 당시 생각할 수 없는 행운이었고, 이것은 신의 자손 천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게끔 세뇌했다. 그러니 천황은 절대적 권한을 소유한 존재였다. 그런데 1946년에 제정된 신헌법은 구헌법, 즉 메이지헌법에서 규정한 절대적 천황주권을 부정하고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지위만 남겼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한국 사람들에게 천황은 군국주의 그 자체로 인식된다. “덴노헤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강요당하면서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끌러갔다. 전쟁의 원범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지금까지 천황제는 폐지되지 않고 존속하고 있다.

상징천황제

2차대전 후 연합군은 일본을 점령했다. 미국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근원이 천황제이 있다고 보고 천황제 폐지를 검토했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는 달리 해석했다. 맥아더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마음을 읽었다. 일본인들은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군부세력에 이용당한 천황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쇼와천황(昭和天皇, 재위 1925~1989)은 국가의 원수이자 최고통수권자이었지만 전쟁에 대한 의지와 권한이 없었다고 믿었다. 메이지헌법상 천황의 주권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회와 내각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내용은 헌법에 한정되었다. 즉 관련 법률규정에 따라야 하고 관련 국가기관의 협조가 필요한 입헌군주제하의 권한이었다. 결코 절대적이고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하튼 맥아더 사령관은 천황제 폐지에 따른 일본인들의 저항을 감안했고, 한편 천황을 이용한 정책을 모색했다. 점령정책에 천황의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맥아더 사령관의 결정에 따라 천황의 절대 권력은 박탈되고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즉 상징천황제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일본국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 같다.

1946년 1월1일 천황은 스스로 신격을 부정하는 ‘인간선언’을 했다. 이후 근대적이고 민주적이며 대중과 함께하는 천황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징천황제에 따른 천황의 존재에 대해서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긍정적이다. NHK가 조사한 현대일본인의 의식구조에 따르면 전국민의 40%가 호감을 가지고 있단다. 무관심 역시 비슷한 수준이다. 헌데 주목할 점은 반감을 표하는 국민이 2%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존경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사람도 20%에 달한다.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선입견 때문일까. 일본의 황실 사람들은 매우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유럽 왕실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비키니 차림으로 요트를 타고 있는 사진이나,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이혼을 하는 등 개인적 스캔들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항상 우아한 미소로 가볍게 손을 흔들고 인사한다. 황실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들은 좀처럼 사람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지금 세간에서는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의 다이어트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는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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