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아빠 힘내세요!
간바레, 간바레, 간바레~!!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연말이라 한잔하고 온지라 현관부터 시끄럽다. “아빠 냄새나”라면서 눈을 잔뜩 홀긴 딸아이의 하얀 뺨에 시커먼 얼굴을 들이대고 뽀뽀를 하니 기겁을 한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간바레, 간바레, 간바레~’라면서 끝나는 <간파쿠 실각>이라는 노래를 연상한다. ‘간파쿠(?白)’란 성인이 된 천황을 보좌해서 정치를 관장하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4)부터의 직책에서 비롯된 말인데, 위력이나 권력이 강한 자를 가리킨다. 더 나아가 집안에서만 위세를 부리는 남편을 뜻하기도 한다. 이른바 가부장적 남편을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실각’이라니 의미심장하다.
간파쿠 선언
?일본에서는 요즘 인기가수 사다 마사시가 부른 <그대의 남편이요 주인이 선포하노라>라는 노래음반이 80만장이나 팔려 나가는 등 인기곡 1위를 기록하면서 이 노래가 여성을 모독했다는 반대파와 그렇지 않다는 찬성파 토론이 분분.
“나보다 먼저 자도, 늦게 일어나도 안 된다. 밥은 맛있게 만들어라. 항상 아름다워라. 잔말 말고 나만 따라와라. 시어머니, 시누이와 지혜롭게 지내라. 남의 흉은 하지도 듣지도 말고, 쓸데없는 질투는 하지마라. 바람은 아~마 피우지 않겠지만 조금은 각오해라, 나보다 먼저 죽어도 안 되고, 내가 죽으면 눈물을 두 방울 이상 떨어뜨려라.”
이런?얄미운 노랫말 때문에 남존여비니 여성차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잊지 말아라. 내가 사랑한 여인은 생애 너 하나’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모든 것이 용서된다.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에게 의존하면서 뭔가 서툰 애정을 표하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서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이 노래는 최대의 히트작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지금도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80년대 중반 일본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교장선생님께서는 <간파쿠 선언>의 가사를 개조해서 축사를 했다. ‘그대들을 졸업시키기 전에 해둘 말이 있다. 상당히 냉엄한 말도 하겠지만 나의 본심이니 들어주기 바란다’면서. 세월은 많이 흘렸지만, 지금도 일본의 졸업식장에서는 아직도 이 문구가 종종 이용되고 있다.
간파쿠 실각
94년, 유부남이 된 가수 사다 마사시는 이 노래와 짝이 되는 <간파쿠 실각>을 발표했다. 사다 마사시는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아빠와 포치(애완견)’라는 주제의 콘서트 토크 시간을 가졌다. 그의 콘서트에는 항상 이런 시간이 마련되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여기서 장난삼아 부른 노래가 바로 <간파쿠 실각>인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아빠들의 응원가’로 완성되었다. 그래서인지 <간파쿠 실각>의 CD에는 중간 중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한다. 나도 덩달아 웃지 않을 수 없다.
노랫말은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기는 했지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일뿐이다. 상당히 섭섭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의 본심도 들어주기 바란다’로 시작한다.
나보다 먼저 자도 좋으니 찬밥 정도는 남겨주기 바란다. 포치와 둘이서 어제 남긴 카레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건 너무 울쩍하다 … 각자 불만은 있겠지만 그래도 가족이 되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너희들의 웃는 얼굴을 지키기 위해서 ‘직장’이라는 전쟁터를 향한다. 오른손에는 지하철 정기권, 왼손에는 음식물쓰레기 …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고 맹세했다. 세상살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 간바레, 간바레 간바레 모두 간바레…라면서 곡을 마친다.
‘간바레’는 ‘힘내라’라는 뜻을 담은 응원의 메시지인데, 운동회 때 우리가 ‘이겨라’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간바레’라고 하는 것을 보면 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강견히 버텨라, 참고 노력하라, 견인발분(堅忍發憤), 우겨라 등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간파쿠 실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시대 우리 아빠들의 모습이다. 나는 이 노래의 답가를 준비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