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사할린과의 만남②

강제 동원된 한인들

일본열도의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가늘고 길게 드러누운 동토의 섬 사할린이 있다. 러시아 연해주 동쪽 끝에 해당한다. 이 섬에는 100여개의 민족이 거주하는데, 러시아인 다음으로 한인이 많다. ‘사할린’이라는 이름은 ‘검은 강으로 들어가는 바위’라는 몽골어에서 유래된 것이란다. 그러니 멀고 먼 사할린 땅에 한인의 조상이 머물기까지 험하디 험한 역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석유 석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사할린을 둘러싸고 눈독을 들이던 일본과 러시아는 1855년 화친조약을 맺고 사할린을 공동 관리구역으로 정했으나, 1875년 러일 국경을 확정짓기 위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가라후토·지시마 교환조약)으로 러시아가 사할린을 차지한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포츠머스조약으로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남사할린)을 할양받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식민통치를 하기에 이른다.

일본이 사할린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기피하는 일본인 대신 한인을 적극적으로 유입하기 시작했다. 군국주의의 길을 걷던 일본은 1938년 4월1일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필요에 따라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법도 갖추었다. 이에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쪽에서 한국인들을 대거 끌고 갔다. 이 시기에 강제 동원된 한인들은 사할린의 30여개 탄광과 벌목장 그리고 건설현장 등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그 숫자는 당초 15만 명에 이르렀으나 이중 10만 명은 다시 일본으로 전환배치되었고, 해방 당시에는 약 5만 명에 가까운 한인이 사할린에 남은 것으로 파악된다.

돌아올 수 없었던 한인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5만 명의 한인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귀국선을 타지 못하고 얼어붙은 땅 사할린에 버려졌다. 일본이 철수하면서 한인은 일본사람이 아니라고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일본의 패전으로 사할린은 이제 구소련의 땅이 되었고, 1946년 12월 ‘소련지구 인양(引揚)에 관한 미소협정’으로 일본인 귀환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에서 규정한 귀환대상자는 일본호적을 가진 ‘일본인’만이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합병하면서 한인을 모두 일본국적자로 처리했지만 호적만은 달리 구분하고 있었던 차라 한인은 제외되었다.

이후 1956년 일본과 구소련이 국교수립을 하면서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일본인들의 귀환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 잔류일본인만이 아니라 유골까지 송환되었다. 이 중에는 일본인과 결혼한 한인도 몇몇 포함되었지만, 원천적으로 한인은 제외되었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조약을 통해서 일본은 사할린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으며, 조선의 독립을 승인했기 때문이란다. 조선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할린 한인들로부터 일본국적을 박탈한다는 것이고 한인의 귀환은 이제 더 이상 희망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한인들의 국적

가슴이 막막해지는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될 당시 ‘일본국적자’였던 그들은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구소련 국적법에 따라 ‘무국적자’로 처리되었다. 일본은 그들을 버렸고, 조국은 그들을 잊었다. 동토의 땅 사할린에서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다.

사할린 개발을 위한 노동력이 절실했던 구소련이 한인의 귀환을 꺼려했던 것은 당연지사였고, 소련국적 취득을 유도했다. 무국적자의 경우 여행을 금지했으며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주지시켰다. 북한 역시 선전요원까지 파견해서 국적취득을 적극적으로 종용했다. 구소련은 북한하고만 국교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분단되기 전 조국을 떠난 사람들에게 남이나 북이나 같은 조국이었다. 행여 조국으로 돌아갈 길이 조금이라도 빨리 열리 것을 기대할 뿐이었다. 이런 소련과 북한의 국적취득 정책으로 1973년에는 소련국적 35%, 북한국적 50% 무국적 15%이었다.

<명자 아끼꼬 쏘냐> 한인들의 강제노동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

2 comments

  1. 역사의 피해자이자 산 증인인 그들.
    이제 우리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요…
    전 일본을 좋아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사죄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건, 돈과 환경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일본에 대해서 더욱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그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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