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중환자실에서 죽지 말자”

“…옆에서 사람에게 전기충격기를 대고 사람이 고압전류에 펄쩍 뛰는 걸 보기도 했어. 절대로 중환자실에서 죽을 게 아니야.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본문 가운데) 

얼마 전 암 때문에 간을 이식받은 친구가 바닷가에 사는 나를 찾아왔다. 건강하던 몸이 반쪽이 된 것 같다. 암이라는 죽음의 통지서를 받고 많은 친구들이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살아있는 그를 보니까 반가왔다. 열네 살 무렵부터 우정을 유지해 온 동네 친구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돌이켜 보니까 나는 평생 두번의 큰 기적을 경험한 것 같아. 첫 번째는 대학입시 때야. 1차에서 떨어지고 2차 대학의 시험을 본 후였어. 갑자기 슬퍼지는 거야. 초등학교때부터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입시만 치르면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되는 거야. 대학입시도 재수를 했는데 또 1차에서 떨어졌어. 아무도 없는 예배당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모르면서 십자가 앞에서 한탄했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느냐고. 내가 안 되는 게 그렇게 즐거우시냐고 따졌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거야. 1차시험을 쳤던 대학에서 연락이 온 거야. 합격자 중에 사고가 있어 나를 합격시키기로 했다는 거야. 나한테는 기적이 일어난 거지.”

그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사업을 하고 큰 부자가 됐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 한 이식수술도 그래. 암을 통보받고 자네가 권한 대로 공책에 시편 23장을 열심히 썼지. 마누라가 지나가다가 도대체 뭘 하느냐고 묻더라구.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하니까 이해가 가지 않았나 봐. 간 이식수술을 하는 도중이었어. 큰 수술이고 깊은 마취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인데 이상하게 수술 도중에 내가 의식이 있는 거야. 도대체 그럴 리가 없는 거잖아? 아프다는 느낌도 있었어. 그런 속에서 시편 23장 중 한 문장이 떠오르더라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계곡을 걸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구절이었지. 그걸 두 번 암송하고는 다시 깊은 무의식의 바닥으로 떨어졌어. 수술 시작 후 사흘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다고 의사가 그러더라구. 그 깊은 혼수상태 속에서 나는 왜 의식이 있었을까. 그게 사실이었을까. 그런 의문도 들고 담당의사가 하는 말이 칠십 노인이 나같이 혈관 상태가 좋은 사람을 못봤대. 혈관 접합이 아주 힘든 수술과정이라고 하더라구. 하여튼 나는 이번에 다시 살아난 걸 기적이라고 생각해.”

“그래 다시 살아나서 보는 세상이 어땠어?”
“말도 마. 나는 다시 죽어도 절대 중환자실에 가지 않을 거야.”
“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다시 보는 세상이 중환자실이었어.내 침대 바로 옆에 의식이 없는 환자가 있었는데 생똥을 줄줄 싸는데 욕창으로 살들도 썩어들어가는 거야. 면회오는 가족도 없는 오래된 환자라고 했어. 그 옆의 여러 중환자들도 모두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똥을 싸는 거야. 다시 돌아온 세상은 똥 냄새가 가득한 지옥이었어.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서 기저귀를 채워주면서 그냥 똥을 싸시라고 하더라구. 내가 결벽증이라 그런지 도저히 못 싸겠더라구. 그래도 천사 같은 간호사가 당번일 때는 열심히 똥을 닦아 주더라구. 나는 똥을 싸기가 싫었어. 그래서 결심을 하고 물도 거절하고 5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었지. 한편으로 침대에 사지가 묶여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거야. 그래서 나무판자 하나라도 등에 대달라고 했더니 그냥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생 난리를 폈더니 그때야 의사가 나를 일반병실로 옮기라고 하더라구. 옆에서 사람에게 전기충격기를 대고 사람이 고압전류에 펄쩍 뛰는 걸 보기도 했어. 절대로 중환자실에서 죽을 게 아니야.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간을 이식받고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거야?”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성공사례만 떠들어 대서 그렇지 사실은 몇 년 안에 죽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으로 시편 23장을 만번 쓰는 걸 목표로 하면 어떨까? 내 블로그 속의 마음 친구가 만번을 쓰라고 권해서 실행 중인데 엊그제는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거야. 하루에 세 번 쓰기도 쉽지 않아. 계산해 보니까 만 번을 달성하려면 인생 팔십을 넘을 수도 있는 거야. 하나님이 다 쓸 때까지 기다려 주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세상에 할 일이 남아있는 동안은 데려가지 않을 거 아니야?”

“그러네”

친구가 내 말에 동의했다. 나는 속으로 그가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