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친일논쟁⑬] 화신백화점 박흥식의 경우

변호사로 감옥 안에 있는 죄수들을 만나왔다. 여행을 자주하던 나는 그들이 좁은 방 안에서 참 갑갑할 것 같았다.

어느 날 한 죄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감옥 안에서 저도 해외여행을 할 수가 있어요.”
“어떻게?”
내가 물었다.

“여행책자를 구해 읽는 거예요. 그리고 감방 안에서 그 책을 바닥에 놓고 양팔을 비행기 날개같이 펴고 눈을 감고 책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내가 지금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에 있다고 하고 상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책에서 본 까페도 나오고 거리에 오가는 사람도 보여요. 그렇게 세계 어디든지 여행을 할 수 있어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도 문학과 역사책을 통해 시간과 공간 속을 자유롭게 여행했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도 영혼이 빠져나와 셋째 하늘까지 가서 구경하고 왔다고 했다. 그는 영혼만 갔는지 몸까지 갔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늘은 나의 영혼이 시간의 청록색 안개를 뚫고 90년 전쯤의 서울 상공으로 날아가 보았다. 그 거리풍경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의 광화문 자리에 조선총독부가 서 있다. 낯이 익은 건물이다. 내가 그 건물에 들어가 군법무관시험 합격증을 받았었다. 한참 의사들이 투쟁을 하는 서울 의대 자리가 경성제국대학이다. 그 본관건물도 내게는 익숙하다. 평생 우리 동네를 지킨 늙은 의사의 진료실 벽에는 그 건물 앞에서 졸업식 때 찍은 흑백사진이 붙어 있었다.

경성의 남산쪽에 높은 돌계단이 보이고 그 위에 일본신사 앞의 도리이가 보인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신궁이다. 없어져서 어디 있는지 몰랐는데 남산식물원 자리가 거기다. 내 영혼은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경성 시내 거리로 내려간다. 인파로 붐비는 혼마치 거리가 보인다. 지금의 충무로다. 부근에 일본백화점들이 보인다. 미스코시백화점이 보인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건물인 것 같다. 조지야백화점도 보인다. 내가 더러 가던 미도파백화점이 그 시대엔 조지야백화점이었다. 지금의 대연각호텔이 히라다백화점이다. 혼마찌 거리의 도로 양쪽으로 은방울 꽃 모양을 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차분하면서 아름다운 모양이다.

화신백화점

나는 종로거리로 가본다. 조선인이 오너인 지상 7층 지하 1층의 화신백화점이 보인다. 연건평이 2천평으로 미스코시백화점보다 더 넓다. 6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2층까지는 에스컬레이터도 가동되고 있다. 1층은 향수같은 고급 화장품을 팔고 있다. 2층에는 귀금속과 카메라 상점이 보인다. 3층은 신혼 혼수용품들이 보인다. 4층은 사무용품을 파는 특별매장이고 5층에 식당이 보인다. 6층은 유럽에서 수입한 가구들이 보이고 7층에는 미용실과 금붕어, 새, 원예용품들이 보인다.

백화점의 한 구석에 있는 사무실에서 백화점 직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내 영혼이 그곳으로 스며들어 회의광경을 훔쳐본다. 젊은 조선인 사장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

“미스코시백화점에 우리 조선인 고객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쇼핑을 즐기는 조선 상류층의 재력은 일본인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조선인들의 구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급료가 높은 일본기업이나 대형공장에 취직한 조선인이 20만명을 넘습니다. 돈 있는 조선인들이 우리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미스코시백화점에 뒤질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동경에 가서 백화점 비즈니스를 철저히 배웠습니다. 일본의 대기업사장들과 직접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조선식산은행장 아루가와 만나 자금융자 문제를 튼튼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미스비시백화점을 능가하는 조선인의 백화점이 되어야 합니다.”

화신백화점 설립자 박흥식

그는 박흥식이라는 젊은 조선인 기업가였다. 나의 영혼은 그 자리를 빠져나와 백화점 식당쪽을 둘러 보았다. 한 신사가 식탁 앞에 앉아 거리에서 산 조선일보를 읽고 있었다. 그의 뒤로 가서 읽고 있는 신문을 봤다. 칼럼은 경성의 젊은남녀가 동경의 유행을 따라 로이드안경, 밑단이 넓은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일본인 흉내를 내는 걸 나무라고 있다. 신문은 그들을 ‘신조선인 세대’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들이 일본의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고 백화점들의 주요한 고객층이라고 신문은 알리고 있었다.

오늘의 영혼여행은 일본학자 하야시 히로시게가 1930년대의 경성 모습을 정밀하게 기록한 것들을 참고했다. 그 무렵의 조선일보도 읽었다.

내가 가졌던 기존 인식 속의 경성은 달랐다. 우중충하고 적막한 회색의 도시였다. 역사 교과서나 그 시절의 조선인 빈민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받은 인상이었다.

조선일보나 일본학자가 본 경성과 역사 교과서 어디가 더 정확한지 모르겠다. 보는 눈과 대상이 달라서 그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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