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인 나의 뇌리에는 잊혀지지 않는 재판 장면들이 포개져있다. 대도라고 불리던 상습 절도범에 대한 재심의 두번째 공판이었다. 첫 공판에서 그의 입을 통해 그가 겪은 가혹행위를 말하게
Author: 엄상익
[엄상익의 시선] 벚꽃 따라 사라져간 친구 ‘장 판사’
털털거리는 낡은 버스는 스산한 겨울 풍경을 담고 굽이굽이 휘어지는 산길을 달렸다. 차창으로 햇빛에 반사되는 얼어붙은 강이 보였고 서걱대는 마른 갈대가 지나가기도 했다. 장과 내가 버스에서
[엄상익의 시선]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전도연씨 같은 피해자 막으려면
오래 전 파리공항에서 서울로 오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릴 때였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한국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버버리코트 한 벌 입고 가 주시지 않을래요?” 그런
[엄상익의 시선] 깨어있는 시민의 의무
수감 중인 죄수로부터 국가 살인을 얘기 들었다. 그 죄수는 자기의 일처럼 결사적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제가 변호사님을 보고 싶었던 건 석방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엄상익 칼럼] ‘대도 조세형’과 인권변호사의 만남
나는 그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 공판이 시작됐다. 법대 위에 높이 앉아있는 재판장의 주위에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가 끌려 나와 법정 가운데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엄상익의 시선]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
탤런트 송승환씨가 눈이 안 좋다는 기사를 봤다. 시력을 많이 잃었는데도 여전히 무대에 서고, 방송일을 계속하고 있다. 주변의 우려에 대해 그는 “안 보여도 형체는 알아볼 수
[엄상익 칼럼] 성숙한 사회의 조건들
2014년 2월 3일의 일기내용이다. 그날 점심 무렵 나는 광화문 네거리 옛 동아일보 사옥 앞에 서 있었다. 냉기 서린 칼바람이 기온을 영하의 날씨로 끌어내렸다. 허름한 졈퍼에
[엄상익 칼럼] 일흔 넘어 완성된 ‘오랜 꿈’
동해항의 긴 방파제 위의 작은 등대에서 신비로운 녹색 빛이 반짝이고 있다. 책상 위의 시계가 아침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다. 며칠 전 바닷가 집으로 이사를 왔다. 노년의
[엄상익 칼럼] ‘나이값’과 ‘시대의 어른’
음식점에서 노인들이 떼로 모여 앉아 고함 지르듯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귀가 안 들리니까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상익의 시선] 죽을 때 가져갈 책은?
나는 서울 아파트의 책장을 정리하고 있다. 동해 바닷가에 마련한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서다. 책장에는 내가 읽고 언젠가 또 읽으려고 선정해서 보물같이 보관한 책들이 들어차 있다.
[엄상익의 시선] 영혼이 살아있는 착한 노숙자들
가수 송창식씨가 화면에서 벙글거리며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부르던 노래 ‘고래사냥’은 우리세대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그가 처참했던 젊은 시절을 얘기하고 있었다. “노숙자생활을 했었어요.겨울에 너무
[엄상익 칼럼] 시편 23장 필사하면서 마음밭을 갈다
“깍두기공책에 시편 23장을 한번 쓰는 데 천원 주마” 초등학교 4학년인 손자와 계약을 맺었다. 엄지 도장을 찍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수고하고 받는 돈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상익 칼럼] 나는 어떻게 크리스찬이 됐을까
화면 속에서 평론가 김갑수씨가 신랄하게 부패한 교회의 행태들을 질타하고 있었다. 성경의 과학적·역사적 증명의 결여와 논리적 허점을 지적했다. 영혼이 없는 좀비가 되어 목사를 숭배하는 신도들을 말했다.
[엄상익의 시선] 재벌사위가 된 교수의 결혼생활 ‘미궁’
나는 40년 넘는 기간 결혼생활을 하고 또 변호사로 수많은 이혼소송을 하면서 그들이 금이 가고 깨지는 모습을 보았다.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재벌집 사위로 들어가 후계자가 되는
[엄상익 칼럼] 생기와 오기, 그리고 냉기
오래 전 유럽으로 삼십명 가량이 가는 패키지 관광여행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여행이 중반쯤 됐을 무렵이었다. 그 중의 두 남자가 눈에 거슬렸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조종하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