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아이에게 권총을 쥐어 준 것일까”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헌법적인 요건을 갖추었는지 의문이다. 설익은 대통령의 해프닝은 아니었는지 의문이다. 당연히 예상되는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에 바로 비상계엄을 끝냈다. 명태균의 말처럼 어린아이에게 권총을 쥐어 준 것일까. 야당이 못되게 구니까 다 쏴 죽이고 싶었을까.(본문에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군 장갑차와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들어왔다. 국회의원들이 몰려들고 새벽 1시쯤 국회의장이 비상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 150분만이었다.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군인 1000명이 오면 10만명의 시민이 몰려드는 민주화가 진행된 시대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 언론인이 ‘자해 아파컷’이라는 짧은 단어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 정도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 자살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세계가 놀라고 국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통령의 지위나 권위는 끝난 것 같다. 함량 미달의 설익은 존재였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상관이었던 선배를 만났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초임 검사 시절 그 동향을 보고 받던 위치에 있던 분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홍 검사나 윤 검사는 다른 검사들보다 튀는 경향을 보였지. 뭔가 일을 낼 사람이라는 평가 보고가 올라오기도 했었어. 건들거린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고 말이야. 순간순간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표를 얻는데 성공한 거지. 국민들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의 한 장면으로 판단하지. 그게 이미지 정치지.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모자란 부분을 열정이나 눈물로 익게 해야 되는 데 말이야.”

윤석열 대통령은 열정이나 눈물 대신 국가폭력을 사용한 셈이다. 그런데 그게 실패한 것이다. 뉴스 화면을 보면 동원된 군인들에게서 어떤 충성심이나 살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장군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전두환의 심복 부하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에 나를 특전사령관으로 임명했어요. 나는 사령관이 되자 정예 특수대대를 편성해서 나를 지키게 했죠. 12.12사태 때 특전사령부 예하의 공수여단장들이 부대를 끌고가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하고 자기네 사령관에게 총질을 했잖아요? 저는 그런 꼴은 당할 수 없었죠. 특전사령부를 완전히 장악했어요. 전두환 대통령 말기에 소위 6.10항쟁 때 시위대가 점점 불어나고 정권이 휘청거리니까 전두환 대통령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출동하겠느냐구요. 저는 정보장교들을 풀어서 시위대의 상황을 살폈어요. 특전사 병력으로 전국민을 상대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안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죠. 한편으로는 무서운 전두환 대통령이 나의 항명을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거꾸로 내가 청와대로 쳐들어갈 구상까지 했다니까요.”

비상계엄이 진행되려면 사전에 대통령과 출동부대의 지휘관 사이에 교감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그 얼마 후 전두환 대통령의 측근 비서관이었던 분을 만났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 말 정말 비상계엄을 다시 선포하려고 했었습니까?”
“진짜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다가 주위 상황을 살피고 그만 둔 것으로 알아요.”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국민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6.29선언으로 정국을 돌파했다. 국민의 거센 요구에 항복을 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자 당시 중정부장인 김재규는 국무위원들을 모아놓고 공포 분위기를 만든 상황에서 즉각 비상계엄을 선포하자고 했다. 국무회의의 심의가 계엄의 요건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장관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헌법적인 요건을 갖추었는지 의문이다. 설익은 대통령의 해프닝은 아니었는지 의문이다. 당연히 예상되는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에 바로 비상계엄을 끝냈다. 명태균의 말처럼 어린아이에게 권총을 쥐어 준 것일까. 야당이 못되게 구니까 다 쏴 죽이고 싶었을까.

포고령에 병원에 돌아가지 않은 의사들을 처단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저항하는 의사들에게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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