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2024년 세모, 모닥불처럼 훈훈한 이야기들
동해에 내려와 산 지 3년이 흘렀다.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은 오래된 어떤 따뜻함이다. 얼마 전 내가 자주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중국음식점 주인이 감을 한 상자 어깨에 메고 끙끙대며 나의 집을 찾아왔다. 진종일 감나무에서 딴 것 중 일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걸 홍시로 만들어 저녁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맛있게 먹었다. 중국음식점 주인은 서울의 직장에서 퇴직하고 동해로 내려왔다고 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음식점에 갈 때마다 군만두 2개씩을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목공이 취미라는 그는 의자 100개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포구 옆의 횟집 주인 부부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기들이 만든 야채 수프와 구운 빵을 들고 가게 문을 닫은 후 퇴근길에 나의 집으로 왔다. 개를 친자식같이 키우면서 열심히 장사를 하는 60대의 부부였다. 횟집 주인은 엄마가 일본인이라고 했다. 이모들이 하는 오사카의 장갑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한국의 동해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면서 작은 횟집을 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처음에 우연히 포구 옆의 그 횟집을 갔을 때는 탁자 서너 개인 아주 작은 음식점이었다. 가게 앞에서 넘실대는 푸른 파도가 곧 가게 안으로 들이칠 것 같았다.
시골 도시는 따뜻한 것 같다. 기차를 기다리느라고 작은 묵호역에 앉아있을 때였다. 평소 수첩에 연필로 글을 쓰는데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표를 파는 창가에 가서 혼자 앉아있는 여직원에게 혹시 연필이 있느냐고 물었다. 여직원은 책상 위에 놓인 둥근 필기구 통을 뒤져 몽당 연필 하나를 찾아냈다. 그녀는 연필을 카터 칼로 예쁘게 깎아서 내게 건네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내 기억의 벽에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가 각인되어 있다. 몇 줄 안 되는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세상에는 타다 남은 연탄재 같은 온기가 여기저기 남아있는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어려서 서울역 부근에서 거지 노릇을 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거지 아이들이 깡통을 들고 나가 구걸해 온 얼어붙은 밥을 커다란 낡은 냄비 한 군데로 모은다고 했다. 골목길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아직 불기가 남아있는 연탄재를 가져다가 그 위에 냄비를 얹어 밥을 데워먹었다고 했다. 연탄재의 남은 불기가 거지 아이들의 얼어붙은 창자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고 했다.
그런 연탄재같이 따뜻한 사람들을 나는 곳곳에서 발견했었다. 30년 징역을 살던 한 죄수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뼈가지 얼어 붙을 것 같은 추운 정월 초하루였어요.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출근한 교도관이 내 감방 앞으로 오더니 점퍼 안에서 신문에 싼 뭔가를 쇠창살 사이로 툭 던져주는 거예요. 바닥에 떨어진 그걸 펴봤더니 제사 지내고 남은 삶은 고기덩어리더라구요. 속이 따뜻한 교도관이었어요. 내가 있던 교도소에 감옥에 있는 아빠에게 학용품을 사달라고 편지를 보낸 아이가 있었어요. 그 착한 교도관은 자기 월급으로 학용품을 사서 죄수의 아이에게 아빠가 보내주는 것처럼 해서 보내기도 했죠.”
그런 따뜻한 교도관이 칼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감옥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런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삶을 배우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흉내를 한번 내 보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구치소 앞의 골목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음료수가 든 온장고가 따뜻한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접견할 회장이 생각났다. 나는 따끈따끈한 쌍화탕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구치소 안의 접견실에서 작은 탁자 위에 내가 산 쌍화탕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회장에게 눈치껏 마시라고 싸인을 보냈다. 물론 규칙 위반이었다. 내가 잠시 바깥에 있는 교도관을 보면서 망을 봐주는 사이에 회장은 번개같이 그걸 마셨다. 한참 후 그 회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쌍화탕을 먹어본 순간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에 있을 때 1조원을 가진 부자라고 자랑을 하던 사람이었다. 우리의 삶은 따뜻한 사람을 얼마나 만났는가에 따라 그 질감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세상 곳곳에 피어있는 모닥불 옆에서 따뜻한 곁불을 많이 쬐었다. 대학입시 때 고기 한 근을 사서 슬쩍 대문 아래 밀어 넣고 간 앞집 할머니의 따뜻함이 칠십 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인간의 영혼을 대할 때 서로서로 따뜻한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따끈따끈한 세상에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