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어느 특수부 검사의 후회

검사는 무엇으로 살까. 그래도 이 사회를 바로 잡는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대접은 그런대로 괜찮아 왔던 것 같다. 그런데도 승진을 위해 정계 진출을 위해 욕심이 끝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본문에서)

어느 날 뉴스에서 한 검사가 수억대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보도되는 걸 봤다. 잘 나가던 특수부 검사였다. 그가 검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의 험지에서 경선에서 승리하고 금배지를 달기 직전에 그런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그가 대충의 내용을 이렇게 말했다.

“검사실에 있는데 점심시간에 장인이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장인이 소개하니까 의심을 안했죠. 식사를 끝내고 검찰청으로 들어가는데 장인이 수사비에 보태 쓰라고 2천만원을 주더라구요. 아무 의심 없이 받았죠. 그 후에 장인 친구한테 밥도 얻어먹고 술도 같이 마시고 포커도 쳤죠. 좋은 사람 같았어요. 아무 부탁도 하지 않더라구요. 그러다가 석달 후 자기가 검찰청에 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자진해서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친절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죠. 그게 다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장인에게 몇억원을 준 걸 사건이 터지고야 알았어요. 장인이 검사 사위한테 말해서 잘 봐주겠다고 하고 돈을 받고 거기서 2천만원을 내게 줬던 거예요. 믿었는데 장인이 정말 나쁜 놈이에요.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멀쩡하게 있다가 내가 출마하니까 뒤늦게 터진 거예요.”

그런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검찰에서 나를 구속시키려고 해서 도망 다녔죠. 하필 아내가 그때 아이를 낳은 거예요. 추적이 될까 봐 의료보험도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했어요. 그래도 저는 잘나가던 특수부 검사였어요. 경찰서장을 잡아넣고 이름을 날리고 국회의원 출마까지 해서 경선에서 당선됐는데 하루아침에 바닥에 떨어진 거죠. 잡혀가서 재판을 받았는데 판사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청탁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장인이 소개한 그 사람을 만나 진술을 녹음해서 법정에 제출했더니 재판장이 막 화를 내는 거예요.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니까 듣지도 않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형을 선고 받았어요. 바닥으로 떨어져 보니까 별 후회가 다 들더라구요. 초임 검사 때 잡혀 온 아이 귀 사대기를 때린 것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구요. 방송에서 내가 거액의 뇌물범이라고 매도하는 걸 경험하니까 범인 하나 잡아넣고 신문방송에 이름이 나오는 걸 즐기던 내 공명심이나 명예욕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기소한 것 중에 무죄가 나온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야 정말 그 사람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난 그들의 말에 한 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거든요. 내가 당선이 돼서 국회의원이 됐으면 정말 기고만장해서 날뛰었을 거예요. 내가 이렇게 되니까 주위에서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줘서 도와준다고 그래요.”

고통을 당하면서 그는 눈이 열린 것 같았다.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는 건 투표만이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의 비리 사실을 잡아 감옥에 넣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정치인 중에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선거 과정에서도 순수하게 일해줄 자원봉사자는 없다. 한 검사장은 내게 마음만 먹으면 검찰에서 정계 개편도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사법고시 3차 시험 면접관을 한 적이 있다. 검사를 지망한다는 사람에게 이런 문제를 냈다.

“아버지의 친구가 검사 생활을 하면 박봉에 힘들 텐데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받을래요?”
“정으로 주시는 건데 딱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그러면 얼마까지는 받아도 괜찮을 것 같나요?”

그는 고민을 하면서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월급 정도까지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면 일 년에 수천만원이 되는데?”
“너무 많나요?”

그가 당황했다. 내가 엿본 그들의 일부 의식이었다.

검사는 무엇으로 살까. 그래도 이 사회를 바로 잡는다는 사명감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대접은 그런대로 괜찮아 왔던 것 같다. 그런데도 승진을 위해 정계 진출을 위해 욕심이 끝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소나 말은 콩과 풀을 주면 좋아한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주면 좋아한다. 사람들은 금배지를 주면 좋아한다. 그런 인간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수학이나 철학에 무감각한 소나 말 같아 보이지는 않을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