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대통령 귀가 막혀 있어요”

군사정권에서도 대통령은 민감하게 귀를 열어놓았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이학봉씨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그와 자주 만났다. 어느 날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육사에 다닐 때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귀를 열어놓았죠. 장준하씨가 발행하는 사상계를 열심히 읽었죠. 그리고 ‘정관정요’ 같은 책도 읽었어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정관정요를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통치학의 교과서다. 당 태종은 열린 리더십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귀를 열어둔 사람이었다. 당 태종은 온갖 쓴소리를 하는 참모 위징의 얘기를 들었다. 전부 자신의 속을 찔러대는 말들이었다. 황후는 화가 난 당 태종을 이렇게 달래기도 했다. “폐하가 성군이시니 위징 같은 인물이 있지 않겠습니까?”(본문에서)

화면 안에서 노인인 유인태 전 국회의원이 어눌하게 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귀가 막혀 있는 것 같아요.”

수많은 정치평론이 쏟아지지만 나는 유인태씨의 말은 새겨듣는 편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바른 소리를 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길거리에는 지명수배 당한 그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그는 체제에 순응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

나는 얼마 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은사를 만났다. 대통령의 논문을 지도했고 한동훈 당대표의 주례 선생이었던 그는 학문과 정치적 식견을 겸비한 분이다. 대통령의 임기 초에 바른 소리를 해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더 쓴소리를 하면 척을 질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륜 있는 좋은 선생님을 떠나보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한 친구의 아버지인 광복회 이종찬 회장과도 부딪쳐 파열음을 냈다. 윤 대통령에게 연세대 로스쿨의 이철우 교수는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다. 이종찬 회장은 그 친구의 아버지다. 이종찬 회장은 아들 친구인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걸 봤다. 나는 속으로 윤 대통령은 좋은 멘토를 가지게 됐구나 생각했다. 이종찬 회장은 한국의 역사와 정치 그 자체였고 대통령 경선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종찬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평기자 시절부터 알고 있다. 정치인의 아들이었고 다선의원인 그는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할 적격자인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이 대통령이 귀를 열고 비서실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왜 귀가 막혀 있다고 하는 것일까. 도사나 정치브로커들 같은 허접스러운 사람들의 말에 미혹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잡령에 현혹되어 있는 것일까.

군사정권에서도 대통령은 민감하게 귀를 열어놓았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이학봉씨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그와 자주 만났다. 어느 날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육사에 다닐 때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귀를 열어놓았죠. 장준하씨가 발행하는 사상계를 열심히 읽었죠. 그리고 ‘정관정요’ 같은 책도 읽었어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정관정요를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통치학의 교과서다. 당 태종은 열린 리더십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귀를 열어둔 사람이었다. 당 태종은 온갖 쓴소리를 하는 참모 위징의 얘기를 들었다. 전부 자신의 속을 찔러대는 말들이었다. 황후는 화가 난 당 태종을 이렇게 달래기도 했다. “폐하가 성군이시니 위징 같은 인물이 있지 않겠습니까?”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까. 윤 대통령의 출근과 업무태도에 대해서도 말이 새어 나온다. 청의 강희제는 새벽에 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했다. 하루도 자신의 일상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적대적인 한족 세력의 지식인을 포섭하기 위해 여러 번 찾아가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이었다. 하루 할 일을 미루지 않는 황제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취임 후 하루도 국민을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소리를 듣고 시대정신을 파악할까. 귀가 막혀있다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세상의 소리를 듣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다. 언론이나 기존의 정보망 이외에도 무색투명한 엘리트들에게 부탁해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매일 비서실장을 메이저신문사의 논설위원에게 보내 국정을 설득하고 그들의 쓴소리를 들었다. 그래야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 궁금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