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윤석열 비상계엄’ 조사 군검사 후배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어떤 성격이냐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이라는 주장도 있다. 앞으로 군검사가 병력을 동원한 사령관들을 조사할 예정인 것 같다.
45년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나는 군검사였다. 당시 육군본부에서는 선배 군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를 조사하고 있었다. 계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우리는 모두 계엄사령관의 부하였다. 나중에 군검사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계엄사령관에게 가서 사령관님을 조사해야겠다고 했어.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 바로 옆 건물에 있었고 대통령 살해범과 행동을 같이 했으니까 말이야. 사령관이 불쾌한 표정이었어. 그렇지만 법적으로 어쩔 수 없었는지 하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질문 사항을 만들어 가지고 가서 묻고 하나하나 조서에 기록했지. 계엄사령관은 내가 작성한 조서를 자세히 살피고 읽더니 수정해야 할 부분을 수정하더라구. 그렇게 조서를 받았어.”
그 후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계엄사령관에게 김재규에 대한 수사 상황을 수시로 보고하는데 느낌이 좀 이상해. 어떻게 해서든지 김재규를 돕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
군검사 선배인 그는 강직한 성격이었다. 육군참모총장이고 대장인 계엄사령관의 눈에 들면 발탁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출세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 후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보낸 병력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12.12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전두환측은 최규하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이루어진 대통령 시해 공범의 체포행위라고 주장했고 군사반란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권력이 계엄사령관에서 보안사령관에게로 넘어간 셈이다. 군검사 선배인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최규하 대통령을 조사해야겠다고 주장했다. 법적인 원칙 앞에서 전두환 사령관과 최규하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응했다. 먼 훗날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 육군 중령에 불과한 군검사가 보안사령관이고 장군인 자기를 조사하겠다고 하는 걸 보고 불쾌했다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다.
1년차 병아리 군검사였던 나는 선배인 그를 보고 많이 배웠다. 계급에 위축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그 선배가 멋있다는 생각이었다.
그후 45년 만에 다시 군검사들이 국회에 무장군인들을 데리고 가서 지휘한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 수방사령관 등을 조사할 예정인 것 같다.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육군참모총장도 조사할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젊은 시절 계엄사 법무장교로 근무하면서 계엄사령관의 포고문들을 취급한 경험이 있다. 국회에 나온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육군참모총장은 자기 명의로 나갔지만 포고문을 작성도 하지 않았고, 보지도 못했다고 진술했다. 나는 몇 줄 안 되는 짧은 포고문 중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을 ‘처단’하라는 조항이었다. 그건 법률용어가 아니고 계엄과 직접 관련된 사항도 아니었다. 처단이라는 단어에서는 격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걸 누가 썼을까 의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쓴 건 아닐까.
나는 군의 지휘관인 사령관들이 ‘까라면 까야 하는’ 생각 없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특전사령관은 내게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포고문을 미리 보내면서 군을 출동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는 거절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군이 거부하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령관만 그런 게 아니었다. 12.12사태 때 경복궁 쪽에 모인 신군부를 향해 포를 쏘라는 수경사령관의 명령을 부하들이 거부했다. 그렇게 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관의 명령이라도 위법하고 정당하지 않으면 듣지 않아도 된다. 그게 법원칙이다.
이번에 군을 동원한 특전사령관은 어땠을까. 방첩사령관은 어떤 의견이었을까. 수방사령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지금이 전쟁상태와 다름없거나 사회질서가 붕괴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까. 국회에 나와서 말하는 계엄사령관의 얼굴에서는 어떤 확신이나 철학도 보이지 않았다. 계엄을 주도했다는 국방장관은 중과부적이라는 말을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군검사들은 앞으로 밝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