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보도] “6월항쟁 기간 중 전두환 전대통령 생포계획 있었다”

1987년 6월 19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전국적 규모의 비상계엄령을 준비, 세부지침을 군에 하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육군본부의 작전명령 문서 일부.


민병돈 전 육사교장 “1987년 6월 청와대가 계엄선포하면 707부대 동원해 전두환 대통령을 체포해 하야시키려 했다”

‘광수사태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그게 어린아이 장난이라면 이건 난리 그 자체입니다. 이거 못 막습니다’라고 부하들이 보고해요. 계엄이 선포되면 그렇게 될 거라는 보고들이지요.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한테 계엄 선포 중지 건의를 했던 거죠.”

1987뇬 6월 민병돈 특전사령관(육사 15기)은 “계엄령 내리면 나라 망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온맘과 온몸으로 이를 막기로 했고, 결국 87년 6월항쟁은 전두환 정부의 계엄선포 없이 끝나 대통령직선제를 이루어 냈다. 

“계엄령, 사람들은 몰라요. 비밀리에 계엄령 준비명령을 받았어요. 그래서 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래저래 큰일 난다 싶었죠. 그건 참 아슬아슬해서 만약에 계엄령이 내려지면 (특전사령관인) 내가 진압을 하든가 아니면 반대로 反대통령의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도 하기 어려운 거였어요.”

민병돈 장군은 “불과 7년 전 광주사태가 있었고, 88올림픽이 불과 1년 3개월 남은 상태에서 계엄을 선포할 경우, 군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올림픽은 개최 불가 사태가 될 것이 걱정이었다”고 했다.

민병돈은 작전을 짰다. 계엄령이 내리면 대통령을 체포해야 되겠다고, 그러고 대통령을 그 직에서 쫓아내려고 그랬다.

“707대대라고 있어요. 진짜 특전부대 중에 부대죠. 대대장으로 김익환 중령(육사 28기, 대령 예편)에게 계엄령 발포 시 대통령을 체포하는 역할을 맡겼어요. 김 중령이 청와대 경호실에 있었으니까 대통령 생포에 적임자라고 봤죠. 오래 전부터 신뢰가 깊은 부하였기도 하구요,”

민 장군은 김익환 707대대장을 특전사령관 사무실로 불러 은밀히 지시했다. “계엄령이 나오면 자네는 청와대로 가서 바로 대통령을 생포하라. 위해는 결코 가하지 마라.” 민 장군은 “그런 다음에 과도정부를 수립한 후 최단 시일 내에 끝내고 민간에게 넘길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실제 김익환 중령은 부대원들과 함께 청와대 진입시 대통령 경호를 맡는 27대대를 진압할 가상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27대대장은 김 중령과 육사 동기였다. 

당시 군 일각에선 “민병돈이 쿠데타를 벌여 제2의 박정희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또 계엄 터지면 큰 일 난다. 그러면 박정희 소장이 한 그 역할(5.16 군사정변)을 내가 또 하게 된다고 그랬었거든.”

그런데 이미 알려져 있듯이 1987년 6월 10일 시작한 ‘6월항쟁’은 6월 29일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6.29선언’ 발표로 마무리되고, 계엄령 선포는 일어나지 않았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민병돈 장군의 건의를 받아들인 셈이다. 명령서는 내려졌지만,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계엄령이 실제 선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한 가운데 민병돈 당시 특전사령관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민병돈 장군과의 일문일답.(2024년 6월 17일 오후 2시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의 당마루휴게소 식당에서 가짐)

기자는 앞서 2023년 5월 이같은 내용을 처음 접한 이후 민병돈 장군, 김익환 예비역 대령과의 6-7차례 전화통화와 대면 인터뷰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실체들을 수집해 왔다.   

-1987년 6월 당시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셨죠?
“부대 안에 정보를 다루는 군인들이 시위현장을 살펴본 후 그래요. ‘광주사태는 저리 가라입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번지고 있습니다. 화이트칼러가 주류입니다’ 라고 해요. 이거 큰 일이구나 생각했죠.“

-계엄시 작전 명령서를 며칠 날 받으셨지요?
“그게 6월 19일 받았어요. 당시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호출을 해서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용산 육군본부 총장실에 도착하니 명령서를 전해줍디다. 비상계엄이 발령하면 우리 특전사가 배치될 곳이 나와있었지요. 말하자면 계엄이 선포되면 어디 어디를 특전사가 접수하여 상황 지휘를 하라는 겁니다.”

-그 명령서는 언제 발급된 것일까요?
“보안이 생명이니 문서 수발편으로 전할 수 없는 것이죠. 시급성과 보안성 때문에 바로 그 19일 날, 그러니까 1987년 6월 19일 명령서가 작성됐다고 봅니다. 당일날 말이죠.”

-명령서를 받은 후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걸 받고 고민 많이 하셨을 거 같습니다?
“내가 작전을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곧 결론이 났어요. 88올림픽도 치러야 하고, 뭣보다 광주사태로 군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데 더 이상 계엄은 안된다고 생각했죠.”

-그럼 바로 청와대에 그런 의견을 전달하셨나요?
“며칠씩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게, 이미 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사실 그 직전부터 위수령이 내려질 거라고 소문이 돌았어요. 그런데 당시 대통령 위치에서는 몰라도 우리 위치에서 보면 위수령이나 계엄령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위수령이 내릴 것이라는 말이 돌 때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다면…반대 의견을 어떻게 전달하셨나요?
“당시 보안사 1처장이 장석규(육사 19기)라고 믿을 수 있는 후배가 있었어요. 그더러 고명승 사령관에게 ‘각하께 안 된다고 보고하라’고 전해달라 했죠. 그리고는 내가 직접 청와대 앞 보안사령부로 가서 고명승 사령관에게 얘기했죠. 그는 나와 육사 15기 동기로 평소 말이 통했어요.”

-고명승 보안사령관 하고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광주사태 후 7년밖에 안 지났고, 88올림픽을 불과 1년 3개월 남은 상태에서 계엄 선포를 하면 군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올림픽은 개회 불가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나는 계엄령이 나와도 우리 특전사 부대 동원은 하지 않을 작정이었지요. 이런 뜻을 대통령께 보고하여 달라고 얘기했죠.”

-고명승 보안사령관이 전두환 대통령께는 제대로 보고를 했나요?
“하루 지나 고명승 보안사령관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대통령이 ‘계엄 해선 안된다고 누가 그래?’ 묻더래요. 그래서 ‘민병돈이 그럽니다’ 그랬더니 ‘그래? 알았어 가봐’ 그러더랍니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대로 당시 계엄령은 발령되지 않았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김익환 707대대장에겐 민 장군님의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습니까?
“그렇죠. 계엄이 날 경우 대통령을 생포해야 하니까 그 친구한테도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되잖아요.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자기 부하들 데리고 가야거든. 그래서 계엄 준비명령서 본 직후 김 대대장을 내 방으로 불러 지시를 내렸지요.”

-어떤 지시였습니까?
“생포는 하되 절대 총을 쏘지는 마라. 사실 총을 쏘지 않고 생포하는 게 어려워요. 제일 간단한 건 그냥 쏴 죽이는 건데, 그게 아니고 산채로 잡으라는 거 말예요. 그거 왜 어려운가 하면 거긴 거기대로 경호원이 있거든요. 그러면 한바탕 붙어야 하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참 그게 어려운 건데 김익환이가 아주 거침없이 그 준비를 했거든. 사실 명령서 받기 이전에 사태가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이랬거든요. 왜냐하면 위수령이 내릴 것이다 하는 소문은 그 이전부터 나왔거든. 이 사태에서는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하고 내가 움직이면 네가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그러면 그 친구는 그대로 또 준비를 해야거든. 그때 김 중령이 우리 특전사에서 청와대 사정을 제일 잘 알아요. 청와대 경호실에 파견 나가 있었거든요.”

-고명승 보안사령관을 만나 전두환 대통령께 민 장군님 의견을 보고해 달라고 했을 때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시죠.
“그런 건 전화로 못 해요. 고 사령관을 대면해 가지고 ‘나 준비 다 돼 있어’ 그랬죠. 그럼 무슨 준비라는 거 알아요. ‘나 준비 다 돼 있어’ 다시 반복했죠. 계엄령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사전에 몰라요. 출동하는 부대 지휘관한테만 명령서가 나왔어요. 그런데 (내가 말한) 취소하라고, 그게 말이 됩니까? 이 군대의 명령은 절대 취소 못 하거든요. 그러면 전 대통령이 ‘어느 놈이 이 짓을 하느냐 주동하느냐’ 묻거든 자네가 그 앞에서 ‘민병돈이라고 말하기 참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괜찮다. 나 준비 다 돼 있으니까 내 이름을 대라 그랬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내가 (고명승더러) 직접 가서 보고하라고 그랬거든. 가서 그 얘기하니까 ’그거 어느 놈이야‘ 그러더랍니다. ”민병돈입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웃으면서 ’알았어. 가봐‘ 그러시더래요.”

-당시 많이 긴장되셨겠네요?
“나도 긴장하고 있었거든. 고 사령관이 대통령 만나고 나왔길래 ‘결과가 어떻게 됐냐’ 그랬더니 ‘글쎄 알았다고 그러시는데 이게 뭘 알았느냐고 질문을 못 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알았다. 난 나대로 생각이 있어’ 하고 말했지요.”

민병돈 전 육사교장이 전두환 전대통령 영정에 절을 올리고 있다


-민병돈 장군님은 누구보다 전두환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군내 사조직 하나회도 초기 같이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엄이 발령되면 현직 대통령을 생포하여 하야시키려 했다는 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나는 평생 군인의 길만 걸어온 사람입니다. 또 지금도 전두환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여기고 있어요. 나는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왔고, 불의에 맞서는 것을 소신으로 살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계엄선포가 안됐기 때문에 서울올림픽 개최가 가능했을 거로 봅니다. 만일 계엄이 선포됐다면 역시 계획했던 대로 실행에 옮겼을 것이구요. 그 역시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1972년 특전사 여단장 전두환 대령(왼쪽)과 민병돈 대대장(오른쪽 선글라스 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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