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동해항 빨간등대 언덕의 ‘드림 하우스’

필자(오른쪽)가 짓고 있는 2층집 옥상에서 민병돈 전 육사교장과 작년 12월 19일 낮. 멀리 동해바다가 보인다. <사진 이상기 기자>

나는 동해항의 빨간 등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아내와 함께 작은 2층집을 만들고 있다. 20년 정도 된 낡은 집을 사서 속을 털어내고 다시 방을 만들고 있다. 철물점에 가서 단열재를 비롯해서 시멘트, 모래를 직접 샀다.

창호 가게에 가서 유리와 창틀들을 직접 골랐다. 타일과 변기도 사고 페인트 등 모든 재료를 직접 고르고 있다. 기술도, 노동할 힘도 없는 나는 그때그때 인력소개소에서 한두명씩 사람을 구해 쓴다. 지방이라 그런지 조적공이나 미장공 칠쟁이 등이 모두 내 또래 영감들이다. 힘쓰는 젊은이는 러시아인들뿐이다. 일꾼이 천정에 박힌 못들을 뽑아 바닥에 던지면 나는 그걸 쓸어서 마대자루에 담는 일용잡부 노릇을 한다. 오래된 건물에 쌓여있는 먼지가 지독하다. 그걸 잠시 마시면 가슴이 아프다.

며칠 전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던 밤이었다. 늦게까지 칠쟁이 영감 한 명과 우리 부부 셋이서 일을 했다. 바다에서 얼어붙은 바람이 유리창이 없는 건물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칠쟁이 영감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은 펌프로 천정에 칠을 안개 같이 뿜어댔다. 그는 바닥 구석에서 불붙은 고체연료 깡통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천정의 도색작업을 마친 칠쟁이 영감 얼굴이 녹색 인간 헐크가 된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하나님이 좋은 일꾼들을 보내주시는 것 같다. 일 자체에 감사하며 열심이다. 처음에는 품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더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관찰해 보면 속에 믿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많았다.

집이 아주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나는 언제까지라는 공사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매일 텅 빈 집에 가서 되어지는 대로 한다. 인부가 없으면 그날 공사를 쉰다. 날이 추우면 그날도 휴일이다. 연자방아가 천천히 돌아도 곱게만 빻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노년에는 급할 게 없다. 조용한 호수 위에 떠있는 낡은 배와 비슷하다고 할까.

아들 손주들이 수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전기관이나 배수관을 여유있고 튼튼하게 설치했다. 평생 흰 손으로 책을 읽고 글만 쓰던 내가 노동과 처음으로 마주친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넘겨다 보면서 벤치마킹을 한다. 내가 아는 한 법관은 시골의 고향집으로 내려가 집 앞의 밭을 정원으로 만들고 거기에 꽃을 길렀다. 자기가 죽은 후에 손자 손녀들이 정원의 벤치에서 놀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게으른 나는 일손이 많이 가는 정원은 만들지 않을 작정이다. 대신 바다와 항구 그리고 등대의 아름다움을 빌리면 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꿈을 꾼다. 작은 집이 완성되면 방안에서 나는 뭘하면서 인생의 여백을 색칠해 가지? 엊그제는 유튜브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은퇴한 여교수를 봤다.

70대 중반쯤의 듬직해 보이는 그녀가 노트북 앞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괴테의 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독일 시인의 시를 번역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그녀는 작은 싱크대 옆의 가스 테이블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떡국을 끓였다. 냉장고에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들고 가위로 잘라 접시에 담는다. 이만하면 진수성찬이라고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식사가 끝난 후 다시 오후 작업이 계속된다. 일을 하다가 잠시 책상 옆 벽에 등을 기대고 아픈 눈을 쉰다. 퇴직금으로 지방에 땅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거기서 공부를 하고 노동을 한다. 정원 뒤 깊은 자리에 두 칸짜리 유리정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는 것 같았다. 노년의 수행자 같은 그런 삶을 내 노년의 나침반으로 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만들어질 내 방에서 뭘하고 지내지? 만번을 쓸 때까지…

매일 ‘시편 23장’을 필사하면서 그분과 친구처럼 대화하고 싶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그 밑바닥을 흐르는 그분의 뜻을 알아보고 싶다. 여태까지는 가공한 남의 것만을 인스턴트 음식처럼 먹어온 면이 많다.

진짜 신앙은 작더라도 스스로의 체험에서 얻는 깨달음이 아닐까. 그런게 있어야 배의 바닥짐 같이 나의 중심을 잡아 줄 것 같다. 조금이더라도 매일 노동을 해야겠다. 늙은 학자가 노트북 앞에서 번역을 하는 것이나 조적공 영감이 벽돌을 쌓는 것이나 다 똑같은 자기 실현 방법이 아닐까.

변기를 닦고 청소를 하고 간단한 요리를 해야겠다.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 매일 일지같이 글을 쓰는 행위도 기도라는 걸 다석 류영모 선생의 책에서 배웠다. 나의 방이 완성되면 거기서 동해항의 푸른 물결을 내려다 보면서 매일을 그렇게 살 것이다.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이다. 갑자기 집 앞에 빨간 우체통을 가져다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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