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2024년 끝자락에서 나에게 묻는다 “초심을 지켰는가?”
요한계시록 2장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우리는 발전과 성장을 갈망하지만, 발전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처음의 진했던 마음이 세월의 광선을 쬐며 변색됩니다. 잘해 보고 싶은 뜨거운 열망 속에서 초심이 변성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거추장스럽다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로켓의 추진체처럼 말입니다. 추진체는 로켓의 발사 순간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하지만, 나중에는 무거운 짐이 되어서 버려집니다. 사실 초심은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초심만 버리면 더 멀리, 더 높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심이 유연성을 방해하기도 하고, 초심에 발목을 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심은 로켓의 추진체처럼 소모품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예수님은 “더 잘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처음의 그 태도와 그 마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게 더 잘하는 일입니다.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초심에 발목이 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헛발질을 하지 않습니다. 초심에 의해 유연성이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욕심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신앙만큼은 첫 마음, 처음 사랑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최고의 발전이며 성숙입니다. 교회 안의 대부분의 문제는 첫 마음을 잃은 중직자들이 일으키지 않습니까? 첫 마음을 잃어버린 미숙함 때문입니다. 익숙해져서 미숙해지고 만 것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한 성경 통독이 이제 요한계시록에 접어들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묻기보다는 “내 초심을 지켰는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무리 뒤에는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에서 시작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이 처음과 같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