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예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베드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베드로전서 3장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이 스스로를 뉘우치고 악에서 돌이키며 선해질까요?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은 더 악해질 뿐입니다. 더 악해진 악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악하고 더 독한 방법이 필요해집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악을 제어하고 심판하려는 선한 의도가 도리어 악순환을 가속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순환 속에 휘말리면 악을 심판하려는 나도 악해지는 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악마와 싸우다가 나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권면을 하면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자기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던 일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베드로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악의 고리는 칼로 끊어낼 수 없습니다. 악의 고리는 칼을 칼집에 도로 꽂을 때 끊어집니다. 악에 대한 가장 무서운 심판은 복을 빌며 선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변화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악을 악으로 갚았습니다. 그도 칼을 썼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칼을 다시 칼집에 넣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입니다.

한편으로, 과연 무엇이 악인가? 누가 악인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악이라고 규정할 때, 도대체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곤 합니다. 나에게 유리하면 선하고, 나에게 불리하면 악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친한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도 친해지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압니다.

우리는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선하고, 누군가에게는 악합니다. 선한 면모와 악한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때문에 악을 악으로 갚다가 나도 악한 면모가 계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마저도 악을 선으로 갚으셨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악을 악으로 갚아서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시 34:21)

악, 그 자체가 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권면을 하면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자기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던 일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베드로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은 르네상스시대 두치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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