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이 십자가밖에 없었을까요?

히브리서 5장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이 십자가밖에 없었을까요? 구원자가 고통받는 구원, 어떻습니까? 구원자가 고통을 받는 바람에 신으로서의 체면을 다 구기셨습니다. 그런 구원을 누가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구원 정도는 가뿐하게 하셨어야 했습니다. 십자가 정도는 가뿐하게 지셔야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의 기도 대신 자신감 넘치는 선언을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믿고 따를만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에게 매 맞고 못 박혀 죽은 신을 구원자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였을까요? 하나님께 고난 없는 구원, 고통 없는 대속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분이 왜 굳이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을까요? 일부러 그러신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 의도를 아는 것이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히브리서 5장 8-9절은 그 의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온전하게 되실 필요가 없는 분이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이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천국행 티켓 발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이 단지 사후 천국행의 보장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불러 올리는 일은 단 한 번의 명령으로도 가능한 일입니다.

구원은 성숙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구원의 길보다 인간을 성숙에 이르게 하는 길은 없습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 온전해지는 변화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반드시 나타납니다. 이 성숙한 인격이야말로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리도록 허락된 천국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에 인간은 반드시 성숙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을 누리는 방식이 조금 바뀔 뿐입니다.

순종은 자기 부인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순종하며 우리는 자기 부인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에 성숙이 있고, 영광이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이란 그 길을 앞서 가신 예수님 뒤를 따르는 것이 전부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 그러나 영광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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