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선의, 그 자체가 선행에 대한 가장 큰 보상”
데살로니가후서 3장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
선의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참 억울합니다. 선의가 이용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신감이 밀려옵니다. 선의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낍니다. 선 자체가 나약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회의가 생깁니다. 선의로 행한 일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곤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선의가 생겼다는 것, 선의에 이끌려 무언가를 했다는 것, 그것만큼 대단한 결과가 어디 있을까요? 선의, 그 자체가 선행에 대한 가장 큰 보상입니다. 먼저 받았기 때문에 보상이라고 잘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나에게 어떻게 그런 선한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이기적이라서 나밖에 모르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이웃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 잠깐이라도 들었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입니다. 선행이란 그 선물을 누리는 일입니다. 이미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대가를 바라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이 되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인간이기에 우리는 흔들립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예레미야도 낙심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 마음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좌절감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그 선한 마음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임을 기억하며,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면, 각오입니다. 기대와 더불어 각오가 필요합니다. 섭섭할 수 있겠지, 좌절할 수도 있겠지, 회의가 밀려올 때도 있겠지, 손해를 보기도 하겠지, 하며 각오하는 것입니다. 각오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미리 세워 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불해야 할 상심과 낙심을 미리 예상해 두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대한 만큼 빨리 가고, 각오한 만큼 멀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