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사랑은 상대를 위해 가슴을 떨며 불편한 진실을 말할 줄 아는 것”
갈라디아서 5장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 5:12)
바울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스스로 베어 버리라’는 표현은 성기를 잘라 버리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편지의 서두부터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저주를 퍼부으며 써내려간 편지가 갈라디아서입니다(갈 1:8-9).
바울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의 잘못을 지적하기까지 했습니다(갈 2:11).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하며 직접 사사받은 초대 교회의 수장을 누가 감히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아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모든 것을 덮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줄 모르면 사랑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가스라이팅하고 있거나 당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정 상대를 위한다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늘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것을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세상과 미디어에 의해 착색된 사랑이 교회 안에서 사랑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랑을 흉내 내다 보니 서로 웃고만 지냅니다. 불편한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들을 줄도 모릅니다. 불편함이 지나간 뒤 자기 잘못을 인정하며 서로를 용납하고 화해하는 법은 더더욱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권위와 질서를 잃어가다가 결국 사랑까지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은 엄중하고 단호하십니다. 사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랑은 인간이 상상하는 부드럽고 달달한 감정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진노의 잔에 사랑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사랑은 단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가슴을 떨며 불편한 진실을 말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 불편함을 소화하며 교회 공동체는 성숙하고,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랍니다.
물론, 솔직함과 사랑을 빙자하여 무례하게 구는 일은 반드시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