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 되면, 연합하면, 사랑하면, 용납하면 빛나는 인생
에베소서 2장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우주는 본질적으로 관계의 장(場)입니다. 거대한 은하와 별들로부터 분자와 원자의 미시 세계까지, 각 존재가 관계 맺는 방식이 이 우주가 존재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관계 맺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끌어당기거나 밀어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인력과 척력의 장 속에 모든 존재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별과 별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를 끌어당기는가 하면, 원자핵 내부의 양성자끼리는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를 밀어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양성자끼리 얼마나 가깝냐면 머리카락 굵기의 10조 분의 1 정도로 가깝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에 신기하게도 무지막지한 반발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반발이 둘 사이에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간혹 그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빛이 납니다. 그것을 핵융합 반응이라고 합니다. 핵융합 반응은 주로 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납니다. 고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은 양성자끼리 머리카락 굵기의 10조 분의 1만큼 서로 가까워지며 내는 빛인 것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 이야기가 우리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거대한 관계의 장 속에서 밀어내거나 끌어당기거나 하며 존재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 빛이 날까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약간의 그 거리, 내면의 반발이 너무 강해서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그 거리를 좁히며 빛을 내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하나 되면, 연합하면, 사랑하면, 용납하면 인생에서 빛이 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둘로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척력도 예수님 안의 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치 양성자가 별의 내부에서 자신의 척력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핵가족에 이어 핵개인이라는 개념까지 거론되는 시대를 삽니다. 어느 때보다 핵융합이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요? 캠페인, 무브먼트, 돈, 스포츠, 이념, 제도, 사상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지만, 말 그대로 그것에 사람들이 묶여 있을 뿐, 여전히 둘은 둘이고 셋은 셋입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셋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그분 안에서 진정한 융합이, 연합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 바깥의 어디에서 상호 내주를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