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그리스도인이 구해야 할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빌립보서 2장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인간은 신이 되고 싶어합니다. 신적 능력을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신들린 손놀림”, “천상의 하모니”, “신선놀음”, “신적 경지” 같은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 내면에는 인간을 초월하는 무엇에 대한 동경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신을 선망합니다. 심지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제 나름대로 선망하는 이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신과도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신이 되고 싶어서 금지된 열매에 손을 댔습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뱀이 교묘하게 파고든 것입니다.
종교가 왜 만들어졌을까요? 그 본능 때문입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을 신의 힘을 빌어 이루어 보겠다는 권력 의지가 종교입니다. 또는 해탈하여 자기를 초월하는 상태에 이르는 길이 종교의 길입니다.
그런 인간을 구원하려고 참 신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인간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구원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모든 인간을 압도할 만한 어마어마한 신적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신적 능력을 모조리 포기하기로 자처하셨습니다. 전능함을 다 내려놓고, 스스로 무능해지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 위에서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진정한 신적 능력은 인간이 갈망하는 형태의 전능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막강한 능력마저도 포기할 줄 아는 것이 신적 능력이며 진정한 자기 초월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였지만, 그 자리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구해야 할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능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강함도 아니고, 위대함도 아닙니다.
십자가 지는 능력을 달라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구한 유일한 능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