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두 개의 화면…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현실
요한계시록 4장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요한은 하늘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땅에 휘몰아칠 심판과 재앙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치 태풍의 위성 영상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풍의 반경과 이동 속도, 예상 경로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만 보입니다. 태풍이 불 때면 사람들은 일기예보의 위성 영상을 함께 보면서 태풍을 견딥니다. 아마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라는 폭풍 속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으며 박해를 견뎠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두 개의 모니터를 동시에 보는 삶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자체의 화면과 그 현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입니다. 따라서 현실 속에 살지만 관점이 현실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같은 현실을 봐도 다른 면을 볼 줄 압니다. 가까이에 다가설 줄도 알고 멀리 떨어질 줄도 압니다.
관점이 다르면 판단과 결정도 달라집니다. 동일한 사건, 동일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갈립니다. 거대한 골리앗을 다들 올려다보았지만, 다윗은 내려다보았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우러러보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을 하늘의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에게는 후회의 20년이었지만 요셉에게는 섭리의 20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그리고는 새로운 관점을 선물하십니다. “내가 네게 보이리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2)
요한이 그 음성을 듣고 올라가서 처음 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보좌였습니다. 올라가자마자 이 땅을 내려다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먼저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 보좌입니다.
성도의 다른 관점은 하나님의 주권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형성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며 무턱대고 세상과 다른 관점만을 얘기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새 관점의 본질입니다. 그냥 내려다보기만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허영입니다. 교만과 허영의 눈을 가지고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든 착각하게 되고 오해하게 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