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공명심과 위선’과 ‘진실과 정의’ 사이에서

“하나님은 내게 왜 그 사건과 함께 환난을 보내셨을까. 내면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공명심과 위선을 보게 해주신 사건이 아닌지 모르겠다.”(본문 가운데)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였다. 맡은 사건이 별로 없었다. 일을 얻지 못한 노동자같이 시간만 무료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돈을 못 벌 바에야 차라리 빠삐용같은 불쌍한 죄수를 공짜로 다섯명만 변호하면 천국 갈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건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 무렵 전과자 출신 목사가 내게 ‘물방울 다이어 도둑’을 변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30년 감옥살이를 하는데 짐승같이 학대받고 산다고 했다. 면회 오는 사람 한 명 없다고 했다. 오래 전 신문 기사로 얼핏 봤던 도둑 같았다. 부자나 권력가 집만 터는 도둑이라고 했다. 그 도둑의 사건을 맡았다. 하나님의 도움과 칭찬이 있을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시작하자마자 몽둥이질이 날아왔다. 한 언론에서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유명해지기 위해 스타 범죄자의 사건을 맡았다”고 했다. 똥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어느 날 고교 동창 한 명이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

“거지 출신 도둑놈을 무료로 변호해 주는 걸 보고 우리 동창들 중 상당수가 네가 아무래도 좌파인 것 같다고 그래.”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습절도범을 변호하겠다는데 왜 이념이 개입하는지 알 수 없었다.

법정이 열렸다. 재판장의 눈이 싸늘했다. 그 눈은 ‘너 잘난 척하지 마.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 기자가 찾아왔다. 내가 변호하는 그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인권 문제를 언급했다. 공중파 방송의 8시뉴스의 앵커가 별 헛소리를 다한다고 경멸하는 멘트를 날렸다. 메이저신문의 한 기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 다른 취재원도 많은데 들어준다고 생색을 냈다. 다음날 그 신문의 칼럼은 나를 공명심에 들뜬 변호사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내가 위선자라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맡은 도둑의 어릴 적 친구라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면회 한번 가지 않은 그들이 친구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자기 친구 덕에 내가 유명해졌으니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나에게 날아오는 비난과 욕에 울컥하면서 감정이 요동했다. 그것들이 머리 속에 꽉 들어찬 강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가고 있었다. 받는 비난을 계속 곱씹으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나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소심하고 옹졸한 성격이었다. 나는 사방의 벽에 갇힌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공명심에 들뜬 위선자인가? 내가 왜 그 사건을 맡아서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지?’

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진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공명심이 맞아. 너는 잘나고 싶은 거야. 너는 위선을 부리지만 세상은 네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거야.’

그 말에 또 다른 내가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런 욕망이 없는 놈이 어디 있어? 인정할게.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 그래도 난 진실과 정의를 위해 뭔가 하겠다고 기도하고 시작한 거잖아? 욕만 먹을 거면 집어 치우면 될 거 아니야?’

‘아니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봐. 너는 자신의 속에 있는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지금 불을 통과하는 거야. 남이 침을 뱉으면 그 침을 얼굴에 맞고 돌을 던지면 그 돌에 맞아줘 봐. 그 고난의 과정을 겪어 봐.’

‘내가 왜? 좋은 뜻으로 시작한 건데 너무한 거 아니야?’

욕과 비난의 구덩이에 빠진 나는 그 구덩이를 더 팔 게 아니라 얼른 빠져나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그 사건에 빠져들었다.

1심 재판장은 그를 타고난 범죄인으로 보기 때문에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한 천재로 알려진 판사였다. 냉철한 성격이었다. 재판을 받았던 한 사람이 억울하다고 손가락을 잘라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재판장은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의 로맨티시즘을 철저히 비웃었다.

나는 항소심 법정에서 “인간은 선하다. 늙은 그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성실한 땀을 흘리는 노동으로 감사의 밥을 먹을 것이다”라고 다시 나의 희망을 얘기했다. 항소심 재판장은 그를 석방시켰다. 판사는 더러 속아줘야 한다고 했다.

판사 사회도 가치관이 다양했다. 석방 후 그의 진면목을 본 나는 그의 정신의 다른 걸 뒤늦게 알았다. 어려서부터 그는 구걸과 도둑질이 생존 그 자체였다. 감옥이 차라리 편안한 집이었다. 그는 무도덕 같았다. 그는 다시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 들어갔다. 한 법정에서 판사가 나를 보고 “그 친구 또 도둑질을 했던데요?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물었다. 그 표정에는 흥미와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엄청나게 매질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도 입은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왜 그 사건과 함께 환난을 보내셨을까. 내면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공명심과 위선을 보게 해주신 사건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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