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6공 황태자 치부 들추다…”미련하고 무모했으나 후회는 없다”
어려서부터 나와 오랜 시간을 지냈던 동네 친구가 어느 날 불쑥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미련한데 잘난 척하고 싶어 해.”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친구였다. 그는 돈 냄새도 잘 맡았다.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됐다. 듣기는 거북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내게 “고시라는 게 있어 한 큐 잡는 거야”라고 사법고시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나는 ‘한 큐 잡는다’는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미련했다. 살아오면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불쑥 나섰다가 여러 번 반쯤 죽는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건 잘난 체라기보다는 나의 무모함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을 지도 모른다. 젊은 날부터 나는 끊임없이 일을 저질렀다.
육군 대위로 있을 때 군의 조직적인 거대한 횡령을 건드렸다가 인생이 절단날 뻔했다. 군에서 병사들이 먹는 쌀과 고기 그리고 휘발유가 몰래 빠져나가는 걸 알았다. 헌병대와 보안부대 그리고 군의 간부가 모두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런 판도라의 상자를 무모하게 건드렸던 것이다.
여럿이 합쳐 모략의 역공격을 해 왔다. 법무장교인 내가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했다는 거짓정보가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되어 거꾸로 피의자가 되어 육군본부에서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결정적인 순간 천사가 한 장교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신기했다. 그가 돕지 않았다면 나는 군사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을지도 모른다. 억울해도 약자는 조직적인 음모와 권력의 압력에 대항할 수 없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장교 생활을 마치고 정보기관에 근무할 때였다. 권력의 황태자라고 불리던 사람이 청와대에 있었다. 그는 장관을 추천하고 공천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대단한 권력이었다. 그에게 눈도장 찍히면 출세가 보장되는 것 같았다. 그는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모든 정부 조직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차기 대권의 유망주자였다.
어느 날 그의 비서였던 여성이 내게 스스로 찾아와서 그의 성추행 버릇을 고백했다. 그 여성이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보기관 내 특수팀 요원들이 가지고 있는 사적인 자료를 확인해 보았다.
권력의 지형을 알고 있는 정보관들은 자료만 은밀히 가지고 있을 뿐 역린을 건드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내가 들은 모든 게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혼자 생각했다. 그 어떤 기관도 그를 건드릴 수 없을 때였다. 언론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속에서 나는 양심에 물어보았다. 양심은 하나님의 소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원고지를 꺼내 자필로 그의 지저분한 행위를 낱낱이 적었다. 그리고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그런 불미한 행동이 없기를 요망한다고 썼다. 원고지에 쓴 이유는 그걸 다른 사람을 시켜 공식보고서 형식으로 만들면 비밀이 샐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원고지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나의 직책상의 의무라는 생각이었다.
이틀 후 상급자가 나를 불렀다. “당신을 당장 잘라버리라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왜 목이 잘려야 하죠?”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하고, 그 여자들 말을 믿은 죄야.” “여자들 말이 진실인 것 같던데—” “하여튼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린 것 같은데 안됐소”
나의 미련하고 무모한 성격이 나의 운명을 만들었다. 나 같은 사람은 출세하지 못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머나먼 조상으로 부터 그런 마음의 유전자를 전해 받은 것 같다.
세조는 단종을 살해하고 누구든 그 시체를 거두면 죽이겠다고 했다. 단종에 대해 동정적인 말 한마디도 역적이 되는 상황이었다. 양반도 아닌 나의 조상은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보자 그를 땅에 잘 묻어주었다. 그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죽음의 위험이 닥치자 그는 가족을 데리고 깊은 산으로 들어 가면서 왕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선한 일을 했는데 처벌하겠다면 달게 받지. 해 봐’
우리 조상들은 영월 정선의 깊은 산 속에서 2백년 동안 숨어 살았다고 했다. 어쩌면 나의 무모함에는 조상의 그런 피가 흘러 내리는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무모함이 부끄럽지 않다. 미련하고 무모한 성격이 운명을 만든 것 같다.
나는 주제를 알고 있다. 일찍부터 이면도로의 나의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책을 읽고 살았다. 틈틈이 성질대로 무모하게 내질렀다. 늙어서는 바닷가의 집에서 글을 쓰면서 산다. 행복하다.
그렇죠! 생긴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좋아요.저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일에 의인이 항상 필요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