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칼럼

[엄상익의 시선] 당신은 어떤 묘비명을 남기고 싶은가?

카잔차키스의 묘비. 거기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고 써있다.

 

산과 들을 다니다 보면 오래된 무덤들이 즐비하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돌보지 않은 어떤 무덤은 그 앞에 있던 비석이 기울어져 땅에 묻혀가기도 했다. 이끼 낀 그 비석에는 무덤 주인의 조선시대 벼슬이 강조되어 새겨져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두타산 무릉계곡의 바위에는 조선시대에 왔다 간 선비들의 수많은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에게는 벼슬과 이름이 절대적 가치였던 것 같다.

어려서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곤 했다. 아버지는 지방에 붓으로 조상들의 이름을 쓰고 그 끝에 꼭 ‘학생’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그게 아무 벼슬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인 걸 알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자기 조상이 정승을 지내고 판서를 지냈다는 걸 자랑하는 아이가 있었다. 집에 할아버지의 과거 급제한 답안지가 대대로 내려온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우리 조상은 ‘학생’이었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들에게 각자 죽은 다음 자기의 비석에 적힐 문장을 써내라고 한 적이 있다. 어떤 법조인으로 남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것들을 모아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책이 만들어졌다. 판검사나 변호사가 될 연수생들은 자기의 비석에 무엇을 써넣고 싶었을까. 대법관이나 장관 국회의원이라는 벼슬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생들이 쓴 자기 묘비명 중 특이한 몇 개가 나의 메모 수첩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생했다. 푹 쉬어라’

‘그대 왜 그 안에 있는가? 안 답답한가? 별도 없다. 바람도 없다’

차라리 솔직 담백한 묘비명이다. 중광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라고 했다. 외국에도 슬며시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묘비명들이 더러 있다.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했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를 버리고 자신을 발견할 것을’이라고 했다. 연수생의 묘비명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밥보다 술을 더 좋아했으니 술꾼이라 할 수 있고, 나를 보고 얼굴 찌푸리는 자보다 웃는 자가 더 많았으니 개그맨이라 할 수 있고,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을 더 좋아했으니 자선사업가라 할 수 있다. 지금 행복하게 반 평 땅에 누워있다.’

선비의 낭만이 스며있는 묘비명이다. 또 다른 이런 묘비명도 있었다.

‘꽁초 가득한 재떨이처럼 항상 타인의 아픔을 받아주었고 그 아픔을 대신하기 위해 힘썼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대로 때도 묻고, 흐르는 물결대로 휩쓸리면서 뭐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닌가. 왜 자네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려고 고집을 피웠나. 한 줌 흙으로밖에 안 남을 인생 물결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지 뭘 그리 부딪치고 깨어지며 지냈는가. 자네는 세상에 거하되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즐겼으되 그 속에 매몰되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홀로 걷는 사람이었다네’

선비의 기질이 담겨있는 묘비명이었다. 묘지에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태어난 날과 죽은 날 사이의 빈 공간에 아무 말 없이 압축되어 있다.

내 젊었던 어느 날 잠시 권력가의 보좌를 했던 적이 있다. 상관은 내게 여당에서 출마한 대통령 후보를 은밀히 만나 그 그릇을 살피고 오라고 했다. 언론의 시선을 의식해 직접 만나지 못하고 대신 나를 시킨 것이다. 나는 그릇을 알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 대통령 후보를 조용한 장소에서 은밀히 만났다. 우리 두 명뿐이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가 잠시 침묵하면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으십니까?”

그는 말을 아꼈다. 집안의 몰락과 바꾼 김구 선생이 꿈꾸던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했던 질문을 이따금씩 나에게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먼지다. 그걸 아는 데 수십년이 걸렸다. 먼지인 줄을 모르고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았었다. 내 속에 눈금이 총총한 짧은 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모든 걸 쟀다.

길이만 알고 부피와 무게가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했느냐고 내게 물었다. 본능과 욕심에 따라 짐승같이 살아왔다. 높은 자리에 앉아 군림하고 싶었고 부자가 되고 싶었다. 어리석음과 분노에 휩쓸렸다. 미움과 시기의 병에 걸려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성경이 내 인생항해의 키가 되어 방향을 틀어주었다. 기도가 돛이 되어 성령의 바람을 함뿍 받았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세계를 흐르며 지구별 구경을 했다.

절규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두운 터널을 동행해 주었다. 그게 변호였다. 한자 한자 또박또박 글을 써서 세상에 대고 외쳐주기도 했다. 노년이 된 지금 바닷가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잔잔하게 내려쬐는 햇볕에 감사하며 허락받은 남은 날들을 충만하게 채우려 한다. 감사하며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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