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뜻대로 하소서’ 고백할 때…
사막을 여행한 적이 있다. 몰려있는 낙타 중의 한 마리가 소리를 높여 울고 있었다. 사람을 태우기 싫은 것 같았다. 낙타는 몸을 흔들며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낙타의 길다란 눈썹과 눈 주위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낙타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평생 사람을 태우고 적막한 사막길을 걷다가 죽는 게 낙타 운명 아닐까. 저항하면 할수록 채찍은 강해지고 울음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모래밭에 쓰러져 풍화되고 모래바람이 그 뼈를 덮을 것이다.
니체는 인간의 삶을 낙타의 운명에 비유하기도 했다.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인도에서 어린 코끼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코끼리는 등에 사람이 올라타는 걸 질색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훈련시키는 사람이 올라탔다. 코끼리는 싫다고 몸을 흔들면서 울었다. 목부분에 올라탄 사람이 작은 망치로 코끼리 머리를 때렸다. 코끼리는 아프다고 소리쳤다. 코끼리가 저항하자 화가 난 주인은 망치의 손잡이를 돌려 뾰족한 앞부분으로 코끼리의 둥그런 머리뼈 부분을 찍었다.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그게 주인에게 돈을 벌어주어야 하는 코끼리의 운명인 것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 이웃동네인 안암동 부근에는 마부들의 집이 많았다. 말과 사람이 허름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아침이면 마부들은 말에 멍에를 걸고 뒤에 마차를 연결했다. 마차는 흙벽돌도 싣고 가고 이삿짐도 날랐다. 말들은 어디로 무엇 때문에 가는지도 몰랐다. 마차에 무엇이 실려있는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모든 걸 주인에게 맡기고 뜻대로 하소서 하는 순종의 모습이었다. 저녁 노을이 하늘에 곱게 물들 때 쯤이면 일을 마친 마차는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빈 마차인데도 주인은 뒤에 타지 않고 말과 함께 나란히 길을 걷는 모습이었다. 말을 조금이라도 힘들지 않게 해주려는 주인의 사랑이었다. 주인은 집으로 돌아가 말에게 먼저 물을 마시게 하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리고 말에게 덕분에 먹고 산다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주인에게 순종하는 말은 편한 잠자리도 얻고 끔찍한 보살핌도 받았다. 마부의 아들보다 더 사랑을 받는지도 몰랐다.
인간의 운명도 멍에를 진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젊은 날 나는 가족을 마차에 태우고 앞에서 힘들게 끌고 가는 말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언덕같은 힘든 고비를 올라갈 때 나는 고달프고 입에서 거품이 나오는 것 같았다. 운명을 거부하면서 몸부림치고 울고 싶었던 적도 있다. 멍에를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때면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런 때면 성경을 봤다. 성경 속에 그분이 있었다. 그분은 세상의 멍에 말고 자기가 주는 멍에로 바꾸어 져 보라고 권했다. 그쪽이 훨씬 가볍고 자유로울 거라고 했다. 그분은 말로만 하지 않고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에게 죽음이 다가왔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다가 태도를 바꾼다. 내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의 뜻대로 하시라고 했다. 철저한 순종이다. 그리고 죽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뜻대로 하소서’ 하고 고백할 때 예속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얻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내 계획이나 의사대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는 힘이 든다. 되는 것 보다 안 되는 게 훨씬 많았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 따라간다고 하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태하고 무기력한 건 아니다. 그때그때 그 분이 맡기는 일에 순종하면 편하다는 것이다. 마차에 무엇이 실려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몰라도 말은 순종하면 주인의 사랑을 받고 모든 걸 보상받았다. 살다 보면 내 뜻이 있고 그분 뜻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내가 걱정하며 울 때 그 분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온 몸에 힘을 가득 주고 있을 때 그 분은 내게 힘을 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또 하나의 계시였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그 분이 원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뜻대로 하소서’하고 맡기는 일에 순종하면 편한 걸 늙어버린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