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이웃을 괴롭히면서 지배하는 사람들
밤늦게 고급빌라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경찰서에 있는데 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서로 갔다. 형사과 벽의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사과 구석에 두 여자가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긴 채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친구의 부인이었다. 뺨에 손톱에 찢긴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마침내 일이 터진 것이다. 그 얼마 전 친구가 내게 상담을 했었다. 몇 집 안되는 빌라에 이상한 이웃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집 여자는 밤 2시경이 되면 동네를 그림자 같이 돌아다니면서 화단 꽃들의 목을 전부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공동출입문에 낫을 걸어두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마침내 자기집을 겨냥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주차장에 가면 그 여자의 차가 너무 바짝 붙어있어서 문을 열 수가 없다고 했다. 서로 대화도 없고 시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자기네 집이 표적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아내가 주차장에서 집으로 가려고 계단을 오르는 순간 숨어있던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아내의 머리통을 치면서 공격해 들어와 난투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내가 친구의 부인과 얘기를 시작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그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도 당장 변호사를 살 거야. 이년아. 너만 차가 좋으냐? 나도 벤츠가 세대나 있다.”
그 여자의 정신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도움을 요청한 친구는 명문가로 알려진 재벌집 아들이었다. 명문의 이름 때문에 퍽이나 조심하는 집안이었다. 다만 그 부인의 정의감이 투철한 면이 있었다.
한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앞차가 강아지를 치고 그냥 가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다. 친구의 부인은 그 차를 끝까지 추적해서 경찰에 고발했다. 그런 성격이었다. 두 여자 사이에 왜 심한 격투가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어디서나 이웃을 못살게 구는 존재들이 있는 것 같다. 한 아파트 단지의 대표인 여성이 내게 상담을 와서 말했다.
“저는 음대학장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아파트에서 대표를 할 사람이 없다면서 하도 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가 내게 오더라구요. 그리고 다짜고짜 내 머리끄덩이를 끄는 거예요. 나중에 들으니까 그 여자는 자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찾아가서 그렇게 한대요.”
개인이나 정치권이나 드러나면 망치로 얻어맞는 세상이다.
나도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나의 아내도 아파트 대표를 몇년 했다. 떠맡은 셈이다. 이웃을 괴롭히는 여자가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 특정한 집을 공격하는 게시물을 붙이고 관리 사무소에서 그걸 수거하면 손괴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남의 집 앞에 물품이 놓여있으면 소방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아파트 앞에서 공사가 있으면 주민을 선동해 돈을 뜯으러 가기도 했다. 모두들 그녀를 무서워하고 피했다. 그 여자는 스스로 아파트 대표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그녀가 나서는 걸 반대했다. 아파트 대표인 아내가 그녀의 표적이 된 것 같았다.
얼마 후 구청에서 고발이 들어왔다고 내게 연락이 왔다. 내가 집에서 법률상담을 했으니 건축법상 용도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고발인은 이웃집 여자였다. 생각해 보니까 이웃을 괴롭히는 그 여자가 찾아와서 상담을 해준 적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여인이 우리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돕는 장애인이었다. 나는 대충 짐작이 갔다. 정치판의 더러운 고발 공작이 아파트에도 스며들어 이웃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그런 존재들을 피해 이사들을 간다. 그런 존재들이 보기 싫어 아파트 모임에 아예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웃을 괴롭히면서 지배한다. 툭탁 하면 고소하는 그들은 법도 가지고 논다. 친구의 부인처럼 누군가 그들에게 맞서야 하지 않을까. 정이 넘치는 이웃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분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웃을 미워하는 존재들의 정체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