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헛것에 세뇌돼 있는 나에서 벗어나려면

이미지 엄상익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혼소송 의뢰인인 여성이 변호사인 나를 배임죄로 고소했다. 남편으로부터 돈을 먹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그녀 머리속에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녀의 잘못된 관념을 머리에서 빼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한번 의심을 하게 되면 나의 말도, 행동도, 표정도 모두 거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게 인간이 가지는 편견이다. 의심의 어두움 속에 있는 그녀에게 진실의 빛을 보일 방법은 없었다. 그게 세상이다.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퍼머를 한 젊은 형사가 나를 조사했다. 그는 조사 도중 엉뚱하게 자신의 신세타령을 했다.

“저는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수사 담당 순경의 특채공고를 봤죠. 전문적으로 평생 조서만 작성할 순경을 뽑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시험을 보고 수사과에 배치됐어요. 고시원에서 탈출한 순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단 순경으로 발령 받고 나니까 엄청난 불행이 느껴지는 거예요. 나같은 형사 80명을 지휘하는 여자 수사과장이 고시출신이예요. 수사과장은 이제 경찰서장이 되고 출세 가도를 달리겠죠. 난 이게 뭔가 하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 됐다. 살아오면서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나는 내 안에 자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 자의 눈금은 계급과 돈이었다. 얼마나 높고 돈이 있나였다. 그 자는 부피나 무게나 넓이나 깊이는 잴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자를 가지고 보이는 것마다 그냥 쟀다. 내게 하소연 하는 형사도 내가 마음속에 가졌던 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한번 세상을 재는 자의 눈금을 바꾸어보는 건 어떻겠어요? 지금 하는 일은 사건의 진실을 조서라는 형식으로 형상화해서 표현하는 게 아니겠어요. 현장의 풍경이나 피의자의 행동이나 인상을 묘사하기도 하고 대화를 적기도 하죠. 여러 종류의 사람이나 상황이 기술된 조서들이 모여 하나의 사건기록을 이룹니다. 가지고 있는 직업적 조건을 잘 활용하면 또 다른 장르의 문학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굳이 검사가 되지 못한 거나 경찰서장이 되기 힘들다고 낙망하기보다는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현역경찰인 작가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 세상을 재는 가지고 있는 자의 눈금을 바꾸는 거죠.”

고골리는 러시아의 하급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그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도 하급경찰관이었다. 그는 생생한 체험을 소설로 만들어 고전문학 작품이 되게 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형사의 머리 속에 깊이 틀어박힌 눈금이 고정된 자를 빼어내 주고 싶었다. 그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영원히 존재하는 동안 그의 불행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사실상 나의 얘기를 해주고 있었다. 살면서 참 많은 것에 세뇌되어 있었다.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워낙 보편화된 의식이라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다. 돈에 쪼달렸다. 매달 부족한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고 아이들 학비를 고민했다.

일거리가 없어 실업자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부자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능력이 부족한 나 자신을 자책하고 불공평한 운명을 한탄했다. 그런 상황에서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좋은 말씀들은 오히려 나의 화를 돋구었다. 암흑 속에 있고 그게 세상의 다 인 줄 알았던 내가 빛을 알 리가 없었다. 그 누구도 내게 빛을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을 들어도 나는 그걸 이해할 머리속 공간이 없었다. 잘못된 관념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다.

욕망과 집착이 나를 낙심하게 하고 불행하게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손에 넣으려고 헛되이 정력을 낭비했다. 나는 악몽 속에 있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세상이 머리 속에 박아 넣은 잘못된 관념 때문이었다. 내 머리속에 박힌 잘못된 믿음의 틀을 바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지금 인생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고 있다. 찾지 못했던 소설의 주제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돈이나 지위로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는 재벌회장은 부하들에게 돈을 횡령당하고 분식회계로 고발당하고 주가걱정에 편한 날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했다. 공무원으로 1급까지 올라간 친구는 고교동기가 장관으로 임명되자 자기는 1급밖에 못했다고 불행해 했다. 국회의원을 한번 밖에 못해 먹었다고 불행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순간의 스릴과 성취감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바로 증발해 버리고 행복에 연결되지 못했다. 이제야 뒤늦게 깨닫는 게 있다.

나는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았던 적이 한 순간도 없었다. 행복은 미래에 있지도 않았다. 항상 바로 거기에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나한테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없는 것만 보려고 했다.

머리 속의 그릇된 믿음이 나를 불행 속에 가두어 놓았던 걸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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