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감사인사] “저의 ‘글빵’ 독자님들께”
나의 ‘글빵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글빵을 팔고 댓글빵을 받으면서 사는 노년의 인생이 즐거운 것 같습니다. 마치 따뜻한 화로가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느낌 같다고 할까요. 천사 같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댓글 온기에 동해 겨울 바닷가에서도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오늘은 먼저 저의 글빵 제조 과정을 말씀드리고 여러분과 마음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동해 바닷가 저의 작업장에서 매일 해가 뜰 무렵 일어나 ‘글빵’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글빵을 만드는데 제 나름대로의 의식이 있습니다. 먼저 기도를 합니다. 영혼의 샘에서 맑은 물을 퍼올리는 행위입니다. 다음은 “오늘은 어떤 글빵을 만들까요?”하고 내면 깊숙이 계시는 진짜 가게주인께 묻습니다. 사실은 저도 점원이랍니다. 그러면 그분은 그때그때 어떤 빵을 만들지 알려주십니다.
침묵 속에서 그분은 한 단어나 문장 아니면 한 장면을 펼쳐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어제 보았던 댓글에서, 아니면 만났던 사람이 무심히 툭 던지는 한마디가 그분의 지시가 담긴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게 그날 만들어야 할 글빵의 주제입니다. 그게 정해지면 다음으로 기억의 창고 속에서 유기농 밀가루를 찾습니다. 글 빵을 만드는 데 재료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40년 가까이 변호사를 해 왔습니다. 창고 안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습니다. 창고는 솔직히 말해 삼류소설이나 막장 드라마의 재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직업상 그런 가라지더미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유기농 밀가루를 골라내는 작업을 합니다. 질이 좋은 밀가루에는 고급 버터나 치즈가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긍정적인 시각과 남의 선한 점을 찾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사람들도 부정적이거나 남의 단점은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선한 것을 찾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저는 제 글빵의 독특한 맛을 그것으로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죽을 다 한 후 제 나름의 특수한 불을 통과하게 합니다. 그 불은 반죽 속에 자기 자랑이 섞여있거나 남의 눈을 의식하고 위선적으로 쓴 부분을 태우는 역할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숙부는 변두리 동네에서 작은 빵가게를 했습니다. 불에서 나온 빵 위에 숙부는 달걀 노른자를 붓에 묻혀 발랐습니다. 그러면 빵의 표면이 윤이나고 매끈해졌습니다. 나는 내가 만드는 글빵의 문장들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빵에 계란 노른자를 바르듯 그런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매일 빵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댓글을 통해 빵을 받는 고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분을 보면 참 좋습니다. 이성과 논리로 비평해주는 분도 계셨습니다. 내 글에 나타나지 않은 부정적인 면과 단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럴 때면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비유하자면 내가 아름다운 꽃을 얘기하면 그 꽃을 땅에서 뽑아 내 앞에서 그 뿌리를 흔들어 보이면서 이렇게 더러운 흙이 묻어 있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는 그가 나와 같이 꽃의 아름다움을 그냥 보고 즐기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돈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타고난 부잣집 아들이 아닌 이상 돈에 목마르지 않고 절실하지 않았던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삶은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정을 표시하는 것도 마음을 나타내는 것도 이웃과의 소통도 돈이 그 역할을 합니다. 당연한 전제인 돈 얘기는 가급적 자제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의 현재만 보고 살아온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폐지를 줍는 노인을 보라는 등 삶의 고달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힘든 세월을 살아온 셈입니다. 각자가 세상의 스펙트럼 속 자기자리에서 자기대로 살아가야 하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빵이 배를 부르게 하는 것도 돈을 벌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을 같이 하는 분들에게는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새해에는 댓글로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마음을 함께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새해에는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