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2024년 달포 남기고 나를 돌아보니…

나는 잔잔한 햇빛을 쬐며 느릿느릿 인생의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다. 반짝거리며 출렁이는 수평선 저쪽의 노을은 붉다 못해 타오른다. 나는 삶의 여백을 즐긴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하얀 소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는 질박하고 수수하게 살고싶다.(본문에서)

나는 이따금씩 바닷가에서 살기 시작한 집의 우툴두툴한 벽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낚시꾼들이 묵어갔다는 낡은 집을 샀다. 인력소개소에서 구한 러시아인 일용잡부와 함께 방에 붙은 오래된 벽지들을 뜯어냈다. 철물점에서 흰 페인트를 사다가 내 또래의 늙은 페인트공 한 명과 함께 우중충한 시멘트벽에 칠을 했다. 8kg들이 함석통에 든 묵직한 고체 연료를 여러통 사다가 여기저기 불을 지폈다. 냉기 서린 칼바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칠이 마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어릴 적 다니던 학교나 병원의 벽은 그냥 질박하고 수수한 흰 색이었다. 나는 적당히 때가 탄 듯한 하얀색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도시의 번들거리는 대리석 바닥과 반짝이는 통유리창 안에 있을 때면 튕겨져 나갈 것 같다. 거리감이 느껴진다. 집의 천정에는 알전구를 달았다. 알전구에는 유년 시절의 정서가 묻어있다.

소년시절 나는 육십촉 알전구의 노란 불빛 아래서 공부를 했다. 알전구는 손난로 역할도 해주었다. 수은주가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가고 방구석에 있는 주전자의 물이 얼어붙는 밤이면 나는 알전구를 양손에 쥐고 손을 녹였다. 알전구는 몸의 움직임이 어눌해진 노년이 되어도 쉽게 갈아낄 수 있어서 선택했다.

나는 지붕 위에 태양광을 받아들이는 실리콘 판을 설치했다. 태양이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해 주는 셈이다. 난방도 조명도 냉장고도 샤워도 모두 거저 에너지를 주는 태양의 덕을 보고 있다. 내가 자라던 가난한 시대는 내남 없이 전기를 무섭도록 아꼈다. 전기를 조금이라도 낭비하면 죄의식이 들 정도였다고 할까. 나는 이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온기 있는 방에서 자고 싶다. 돈 받지 않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해가 고맙다.

젊은 날 입었던 괜찮은 옷들은 모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더 이상 격식을 차리고 법정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살아서 줘야 고맙다고 하지 죽고난 후면 사람들이 꺼림칙해 할 지도 모른다.

북평의 오일장이 열리는 날 파는 허름한 옷들을 몇 벌 샀다. 옷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바닷가 아무 데나 앉아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그 옷을 재래시장 구석의 옷 수선집 나이 먹은 여자에게 주어 소매를 줄였다. 젊은날 청계천에서 미싱공이었다는 여자는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아직도 미싱 앞에 앉아있다. 젊은날 그녀의 임금처럼 수선료도 참 싼 것 같다. 고급 캐시미어 자켓을 입고 국물이 묻을까봐 신경을 쓰던 때가 있었다. 아내는 옷이 더러워지면 드라이를 줘야 하니까 땀을 묻히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입기 싫었다. 장군 출신인 친구는 전역을 하고 평생 처음으로 자기 돈으로 고급 양복을 사 입어 봤는데 하필이면 처음 옷을 입은 날 음식을 뒤집어 썼다고 했었다.

나는 요즈음 음식도 소박하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는 시골 장판의 노점상이 팔던 밀가루국수를 내게 사먹였다. 찌그러진 냄비에 담긴 불어 터진 국수 위에는 파를 조금 썰어 넣은 민 간장이 조금 얹혀있을 뿐이었다. 빈티 나는 국수와는 달리 함경도 출신 보따리 장사꾼인 할아버지의 전대에는 돈다발이 가득 들어있었다. 할아버지의 삶이 그랬다. 그 교육 덕에 나는 고시원이나 눈 덮인 산골짜기의 암자에서 공부할 때 어떤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인간관계도 형식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나 모임은 아예 가지 않는다. 영혼의 울림이 없는 만남은 의미가 없다. 쇼윈도우 안의 마네킹이나 들판의 허수아비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모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이 좋다. 꾸밈이나 거짓이 있는 사람은 피한다. 어제는 어릴 적 동네 친구가 전화를 걸어 건강을 걱정해 주었다. 감사했다. 또 세상에서 만난 선배 부부가 먼 길을 찾아와 주었다. 마음이 활짝 열려있는 분들이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마음이 푸근했다.

나는 잔잔한 햇빛을 쬐며 느릿느릿 인생의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다. 반짝거리며 출렁이는 수평선 저쪽의 노을은 붉다 못해 타오른다. 나는 삶의 여백을 즐긴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하얀 소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는 질박하고 수수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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