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어느 장관 출신 70대 노년의 황금빛 석양

황금빛 석양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요양원의 광경을 묘사한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70대 노인이 침대 등받이를 세워놓고 신문을 읽고 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되어 쓰러지기 때문에 베개 두 개를 등 뒤에 받치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일정한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준다. 대소변을 자주보는 게 싫어서 먹고 마시는 양을 조절한다. 그래서 그런지 살이 거의 없고 뼈만 남았다.

그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삶의 황혼에 왜 그런 체험들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신에게 묻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몸이 마비된 친구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벗어나지 못하는 침대에서 어떤 행복을 마음속에 떠올릴까. 자신의 발로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꽃을 볼 때를 그리고 있지는 않을까.

밤늦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중고등학교 동기였다. 그는 일찍 다니던 직장을 나와 이면도로의 허름한 빌딩 지하에 국수가게를 차리고 70대가 된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다. 요즈음은 아들이 주방에 들어가 아버지를 대신하고 일손이 달릴 때면 딸들이 와서 돕기 때문에 편하다고 한다. 아내와 몇년 전에 사별한 그는 양평에 전원주택을 얻어 혼자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어떻게 지내냐?” 내가 그의 안부를 물었다.

“국수를 팔아서 먹고 살면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힘들었지 뭐. 이제야 텃밭을 가꾸면서 혼자 편안하게 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큰 병이 나지 않고 몸을 움직이니 행복하지. 지금이 평생 나의 삶에서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해. 요즈음은 가난해서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의 집 입주 가정교사로 있었던 그 시절이 더러 떠올라. 돌이켜 보면 춥고 외롭고 힘든 시절이었어. 남의 집 계단은 오르기 힘들고 얻어먹는 밥알은 속에서 곤두섰었지.”

그는 내게 어린애 같이 속을 털어놓는다.

“혼자 살기 외로운데 재혼은 안 하냐?”
“죽은 마누라하고도 30여년 울고불고 서로 맞추어 가는데 곡절이 많았어. 이제는 그런 걸 반복하는 게 싫어. 혼자가 좋아.”

그는 외로운지 전화를 끊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 지금이 인생의 밤이 오기 전 마지막 황금빛이 세상을 아름답게 비출 때다. 서로 잘 살아보자.”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대기업 사장으로 있다가 퇴직하고 혼자 사는 친구가 카톡을 통해 내게 보낸 글을 뒤늦게 읽었다. 그는 오래 전에 이혼을 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글이었다. 그 안에 그의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마당 안에 던져진 종이신문을 챙긴다. 토스트를 굽고 과일쥬스로 아침식사를 한다. 환기를 하고 밀린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를 돌린 뒤 마당의 화초에 물을 준다.

그는 늙지만 낡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정말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해서 아주 잘하는 수준까지 만들어 남들이 나를 찾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늙어도 나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 들어서도 성장하기 위해 ‘없는 길’을 찾아가자고 하면서 은퇴 후 본격적으로 중국어 공부를 해서 한시를 지을 정도로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친구를 얘기했다.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인정받고 좋아하는 친구를 격려하고 칭찬해 주었다는 것이다. 늙어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당연하고 건강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보지 않은 길, 없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노년의 성장공식이라고 했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삶은 어떤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무채색일 수 있다. 개개인이 거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부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의 경우는 ‘이게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노년의 여백을 채색해 간다. 혼자 사는 친구들을 보니까 40년 넘게 같이 살아준 아내가 옆에 있어주는 게 감사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데이지 꽃을 보며 함께 산책하는 게 즐겁다.

황금빛 노을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