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2012년 런던올림픽②

올림픽 참가국 205개국을 의미하는 205개의 작은 성화대가 한데 모이면서 거대하고 화려한 불꽃을 내뿜었다. <그림=박은정>

(3)성화 봉송

“캬아~! 베컴이다. 마지막 주자인가 봐. 짱 멋지다!” 데이비드 베컴이 성화를 꽂은 보트를 몰고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장면에 엄마와 딸은 자지러진다. 왠 호들갑이냐고 아빠와 아들은 타박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올림픽 성화 마지막 주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여러 유명인사의 이름을 떠올리는데, 바로 베컴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예상한 바와는 달리, 2012년 런던올림픽의 마지막 성화 주자는 7명의 스포츠 꿈나무들이었다. 점화식 역시 그들의 손에 이루어졌다. 5월11일부터 시작해서 8,000여명의 성화 봉송주자들이 약 1,000여개의 도시를 순회하고 지금 그 피날레를 장식한다.

올림픽 성화의 시작

올림픽 성화는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때 처음 선보였다. 이도 작은 성화대만 있었을 뿐 성대한 의식은 없었다. 성화 봉송의 역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시작된다. 나치는 고대 그리스에 집착하면서 그리스 올림피아에 있는 포물면 거울 안에서 태양의 빛으로 불을 붙이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발칸반도를 거쳐 베를린까지 들고 온 횃불을 성화대에 점화했다. 11박12일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이에 대해서 군국주의적 파시즘의 홍보수단이었다는 부정적 견해가 대두되었다. 성화 봉송에 여러 나라의 청년을 동원해서 그들을 세력을 과시했으며,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성화 봉송의 길을 통해 유럽점령을 확대해나갔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1948년 런던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당시 전범국인 일본과 독일은 초정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나치에서 시작된 성화 봉송도 거부하고자 했으나, IOC의원들은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는 기본이념을 내세우면서 성화 봉송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후 ‘올림픽헌장’에 정식으로 규정해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했다.

도쿄올림픽 마지막 성화 봉송자

마지막 성화 봉송자는 대개 개최국의 유명선수인데 예외도 많다. 그 중 1964년 도쿄올림픽의 경우 특별했다. 19살의 청년 사카이 요시노리(坂井義則)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와세다 대학 육상부 소속으로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선발되지 못했다. 좌절에 빠진 그를 마지막 성화 봉송자로 지목한 것은, 그가 1945년8월6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날이 바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원폭 투하 1시간 반 후에 태어난 그는 피폭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피폭자이다. 여하튼 원폭이 투하된 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푸른 하늘 아래에서 성화대의 계단을 향해 뛰어올라가는 모습은 바로 일본의 부흥을 상징했다.

일본은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전세계인들 앞에서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를 기리는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더했다. 개인적 좁은 소견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일본에 대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데 이것 역시 나의 속 좁은 생각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원폭 피해를 부각하면서 당신들이 바로 전범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물론 원폭과 같은 슬픈 이야기를 다시는 이 지구상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서 아픈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지구의 평화’를 다시 다짐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일본의 자기반성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비둘기

1988년 서울올림픽은 근대올림픽 개막이래 최다 국가와 선수가 참여한 평화의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공적 유치와 개최는 국제사회에 우리의 위상을 높였으며, 국가브랜드 이미지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선진국으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올림픽의 비둘기

그런데 27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역대 최악의 개막식으로 서울올림픽 개막식을 꼽았다. 타임은 ‘사실상 한국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리는 커밍아웃 파티였지만, 지구촌이 보는 앞에서 비둘기 떼가 성화에 타죽는 등 시작부터 불행했다’고 보도했다.

스타디움으로 들어온 손기정옹은 임춘애 선수에게 성화를 넘기고, 임춘애 선수가 성화대 기단에 오르자 어디선가 세 사람이 등장했다. 섬마을 선생님, 예술고등학교 학생, 마라톤 선수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태운 리프트가 성화대까지 올라가서 점화하는 장면은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늙음과 젊음, 남자와 여자(음양)를 담은 불은 천?지?인을 대표하는 세 사람에게 나눠져 ‘우주삼라만상의 불’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화합’을 뜻하는 하나의 불이 되어 서울 하늘에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성화가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에 날린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가지 않고 성화대 주변을 맴돌다가 불에 타죽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후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성화 점화 이후에 날리게 되었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

스포츠 경기로서 사격은 유럽의 꿩사냥에서 시작된다. 이는 계절에 구애를 받는 것이라서 19세기 중반 모형을 만들어 투석기로 날리거나 살아있는 비둘기를 이용했다. 1900년 파리올림픽에는 비둘기 사격 부문이 있었다. 300마리의 비둘기가 경기 과정에서 살해되었고 참가자들과 관중은 피와 새털로 범벅이 되었다. 이후 이 행사는 없어졌고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비둘기를 날리는 행사를 실시했다. 살육을 없애고 평화를 구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조류보호차원에서 개막식 때 비둘기를 날리는 관행을 없애기로 했다. 수많은 비둘기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다 사고로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모형을 활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자전거비둘기가 하늘을 날았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75대의 보라색 자전거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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