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쓱쓱 비벼야 제 맛이지!

주말 오후 밥 때도 아닌데 출출하다. 냉장고를 뒤지니 아침에 먹다 남긴 나물 몇 가지, 콩자반에 멸치볶음, 어제 끓인 된장…, 이런 것들을 양푼에 쏟아 붓고 고추장에 참기름 두 방울 떨어뜨려서 쓱쓱 비볐다. 조금 고급스럽게 계란도 하나 붙여서 올리고 김도 구워서 뿌렸다. 여기에 초가 된 김칫국물을 더하면 일품이다. 다들 숟가락만 들고 달려들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역시! 엄마표 비빔밥이 최고야” 우리 딸 제법 예쁜 말도 골라서 한다. 때마침 운동하고 돌아온 신랑도 숟가락만 들고 한자리를 차지했다. 마지막 한숟가락 아쉬운 듯 쪽쪽 빨면서 웃는데 이에 묻은 김이 여간 웃기지 않는다. 행복이 별건가. 이게 행복이지. 이런 생각하면서 아랫배를 퉁퉁 때리고 마룻바닥에 뒹굴며 리모컨을 찾는다.

비빔밥

전주비빔밥, 돌솥비빔밥, 콩나물비빔밥, 열무비빔밥 그리고 대강 비벼서 먹어도 실망시키지 않는 엄마표 비빔밥.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일본친구들도 한국음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빈바(ビビンバ)’는 불고기, 삼계탕, 냉면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이제는 쓱쓱 비벼서 먹는 묘미를 즐기면서 상당히 좋아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친구들에게 비빔밥은 ‘어려운’ 음식이었다. 한국을 찾은 친구를 데리고 비빔밥을 먹으러 가면,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비빔밥을 앞에 두고 상당히 어려워했다. 밥 위에 올려진 나물을 하나 집어서 밥알 위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지고 간다. 물론 젓가락으로. 내가 상위에 있는 된장국물까지 더해서 비비고 숟가락 가득 담아서 크게 벌린 입으로 가지고 가면, 그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만 보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일본은 음식을 비빈다거나 섞는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일본음식 중에도 비벼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음식이 있다. 가쓰돈(カツ?, 돈카쓰덮밥), 오야코돈(親子?, 닭고기계란덮밥), 규돈(牛?, 쇠고기덮밥)과 같은 덮밥이 그런데 그들이 이것을 먹는 모습을 관찰하기 바란다. 비벼먹지 않는다. 음식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잘 섞어야 밥그릇 전체에 간이 골고루 배분되어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그들은 앞에서부터 한입 먹을 만큼만 섞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처음부터 음식을 섞어서 모양을 흐트러지게 만든다는 것은 식탁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물며 그들은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도 밥 위에 얹힌 카레를 비벼서 먹지 않는다. 역시 앞에서부터 한입만큼만 비비고 입으로 가지고 간다. 처음부터 비비면 모양새도 나쁘고 밥이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진다는 말에 나도 따라서 그렇게 먹어봤는데…, 밥을 두세 숟가락 남기고 소스가 부족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하튼 그들은 섞어서 먹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팥빙수의 행복

이런 더운 날이면 역시 팥빙수다. 많이 비싸기는 하지만 팥빙수 한 그릇은 ‘내 여름의 최고의 사치’다. 책상에 앉았다가 짜증스러울 때는 아이 둘 데리고 동네 제과점을 찾는다. 사각사각 간 얼음 위에 팥, 우유, 밀크시럽, 빨간 딸기시럽, 하얀 떡, 미숫가루, 알록달록한 젤리, 큼직하게 썬 과일들…. 이것 역시 쓱쓱 비빈다. 얼음은 적당히 녹고 떡도 과일도 검붉은 색의 오묘한 세상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제야 “야! 맛있겠다”며 숟가락 세 개가 달려든다.

이런 모습 역시 일본 친구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이전에 팥빙수 집을 같이 간 친구 하나는 “이렇게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왜 그렇게 망가뜨려서 먹느냐”고 질책을 했다. 하얀 얼음 위에 빨갛고 파랗고 예쁜 모양의 먹거리를 끝까지 즐기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일본에도 빙수는 있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심심하기 짝이 없다. 얼음 위에 딸기시럽이나 메론시럽 하나 쮝~ 뿌려서 나오는 게 다다. 간혹 호사스럽게 팥이나 밀크시럽이 더해지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팥빙수와는 비교될 것이 아니다. 이들은 빙수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만 섞어서 먹는다. 나처럼 얼음이 녹을 정도로 섞어서 먹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지저분하고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는 말을 한다. 음식을 만들 때 맛도 중요하지만 모양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뜻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먹을 때도 그 모양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함유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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