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연말

연하장

우편함에서 여러 장의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보험회사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카드가 그래도 반가운 것 중 하나다.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고급 전원주택지에서 보낸 ‘초대합니다’ 카드는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자동차세, 아파트관리비, 가스비 등등 숫자가 적힌 반갑지 않은 것들뿐이다.

이게 웬일인가. 오늘은 아주 특별한 봉투가 하나 보인다. 직접 손으로 적은 주소와 이름. ‘고선윤 선배님께’ 분명 내 이름이다. 몇 달 전에도 만나서 점심을 같이 했고, 며칠 전에도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송구하게 이런 걸 보내다니. 반갑기도 하고 살짝 어려운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는 종이에 ‘근하신년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이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 깨알만한 글씨로 자신의 이야기,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의 근황까지 소상히 알려주고,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기원 덕분이 아닌가 하옵니다’라는 인사말도 잊지 않는다.

귀갓길 눈이 꽁꽁 얼어서 아직 손도 녹이지 못했건만, 마음은 어찌 이리도 따뜻한지. 난 원래 이렇게 작은 것에 감동하고 작은 것에 토라지고 작은 것에 마음을 주는 작은 사람이다.

나의 연말의식

“어이구! 마지막 한 장이네” 이런 말을 하면서 12월 달력 한 장 남기고 어제, 오늘, 내일…, 시간이 지났다. 기말고사까지 치르면, 나는 마치 실이 뚝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잠시 혼돈스럽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결코 싫지는 않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휴일인 양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챙겨본다. 1년 365일 하루도 정리된 적이 없는 책상의 지우개가루를 훔치고, 긁적긁적 몇 자 남긴 메모들을 찢어서 버리기도 하고 다른 종이에 옮겨 적기도 한다. 책상 옆구리에 쌓아놓기만 한 책들도 제자리를 찾아주고, 빨간 줄을 긋고 기억하는 글귀를 다시 음미하곤 한다.

연말이면 항상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아마도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때부터, 이것은 일종의 ‘연말의식’이었다. 아직도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의식을 나는 잊어버렸다.

이렇게 시간들을 정리하고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일이 없을 때, 헐렁한 파자마 차림으로 고타쓰(탁상 위에 이불을 덮은 일본의 난방기구) 속에 발을 넣고 작업을 시작한다. 여기서 작업이란 한해 만난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 카드를 보내는 일이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글을 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소록에 새로운 이름들을 채워 넣는 일이다. 물론 지워야 하는 이름도 있다. 사소한 오해로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지고 어느새 자존심마저 개입되어 영영 지워야 하는 이름이 있을 때는 가슴이 짠하게 쓰리기도 한다.

내가 만드는 카드

중학교 고등학교 나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미술부 부원이었기 때문에 이맘때는 항상 카드 만드는 게 일이었다. 마블링 작업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솜을 붙이기도 하고, 반짝이 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친구의 멋진 아이디어를 살짝 훔쳐서 내 것인 양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중학교 미술부 선생님으로부터 카드를 한 장 받았다. 연 그림의 엽서에 ‘너의 꿈과 미래가 연을 타고 하늘을 훨훨 날아가기 바란다’는 글을 적어 보내셨다. 감동이었다. 나도 이런 카드를, 아니 더 멋진 카드를 만들고 싶어서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문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연 만들 자료를 준비했다. 버려진 부채에서 대나무를 구하고, 반짇고리에서 굵은실도 찾았다.

정성을 다해서 글을 쓰고 문종이에 대나무살을 붙이고 가장자리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실을 꿰기까지 많은 시간 나는 이 카드 받을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한 장을 만들고, 또 한 장을 만들면 동이 트고 새까매진 손끝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고타쓰 안으로 몸을 쏙 집어넣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한겨울 느릿한 하루를 맞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카드를 만들기는커녕, 카드를 보낸다는 것마저 잊은 지 오래다. 메일로, 문자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주소록의 이름들을 확인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기억하는 일도 잊었다.

올해는 나도 카드를 보내야겠다. 붙박이장 깊숙한 곳에서 자료를 찾았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그린 그 밑그림이 있다. 감사하다고, 소중하다고 내 마음 적기 시작했다. 굵어진 손가락이 무디게 움직인다. 그래도 카드 받을 사람을 생각하니 참 많이 행복하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소통’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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