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신도의 나라 일본의 정월

2013년 새해를 맞이하고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이맘때가 되면 정월이라고 장식한 이런저런 것들을 정리한다. 마치 크리스마스 다음날 트리의 불을 끄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를 맞기 위해 김빠진 맥주잔을 치우면서 아침상을 준비하는 그런 모양이다. 뭔가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들뜬 마음이 아니라 차분한 가운데 일상을 맞이하는 그런 의례이다. 어쩌면 모든 일의 ‘시작’은 여기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에서 ‘설’이란 원래 ‘도시가미(年神)’라는 신을 맞이하는 날이다. 도시가미는 일본 고유의 다신교적 신도(神道)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른바 도시가미는 일본의 수많은 신 중 정월에 찾아오는 하나의 신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본 민속학의 개척자인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 1875~1962)는 ‘도시가미란 한해의 수호신, 풍작을 가져다주는 농경신, 가족을 지키는 조상신을 하나의 신으로 신앙한 소박한 민간신’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림=박은정>

가도마쓰

여하튼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바로 도시가미를 맞이하는 행사이니 이런저런 준비를 한다. 그 하나가 ‘가도마쓰(門松)’이다. 대문 앞 양쪽으로 소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장식물을 세운다. 나뭇가지에 신이 머문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으로, 가도마쓰는 바로 신이 머무는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이 내려올 때 헤매지 않고 찾아올 수 있게 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고래로부터 상록수에 신이 머문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에서도 소나무는 생명력, 불로장수, 번영의 상징인지라 채택된 것 같다. 게다가 소나무의 일본어 발음 ‘마쓰’는 ‘제사 지내다’, ‘신을 모시다’를 뜻하는 ‘마쓰루(祀る)’와 발음이 같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모양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기다란 세 개의 대나무를 중앙에 두고 그 주변을 소나무로 장식한다. 그리고 아랫부분을 짚으로 감싸는 모양을 하고 있다. 12월 13일 산에서 소나무를 잘라오는데, 이것이 바로 산에서 도시가미를 모시고 오는 의식이다. 이후 장식을 하는데, 그믐날 장식하는 것은 성의가 없다고 해서 피한다. 29일 역시 ‘구(9, く)’가 고생한다는 ‘고(苦, く)’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피하는 모양이다.

가도마쓰를 장식하는 기간을 ‘마쓰노 우치(松の?)’라고 한다. 이 기간은 신이 머무는 기간 즉 신을 모시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역시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개 1월 7일, 또는 1월 15일에 정리한다.

소정월(일본은 음력을 쓰지 않으니 양력 1월 14일에서 16일 사이)에는 들판에서 연초에 장식한 여러 것들을 태우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신사 입구 등에 굵은 새끼줄로 바깥세상과 구분하기 위해서 친 금줄인 시메나와(注連?)를 새해에는 각 가정에서도 장식하는데, 이것과 새해를 맞이하고 처음으로 쓴 글 ‘가키조메(書き初め)’ 그리고 가도마쓰 등을 태운다. 그 불로 떡을 구워서 먹고, 재는 집으로 가지고 와서 주변에 뿌리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가도마쓰와 금줄을 마련하는 것으로 모신 도시가미를 이렇게 태우는 의식을 통해 다시 신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셈이다.

새해 첫날 이른 아침에 길은 정화수로 먹을 갈아서 쓴 ‘장생전리춘추부, 불로문전일월지(長生殿裏春秋富, 不老門前日月?)’와 같은 글 가키조메를 태울 때 그 불꽃이 높이 올라가면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라고 좋아라 한다.

<그림=박은정>

가가미모치

집안에는 도시가미에게 공양할 떡을 준비한다. 크고 작은 둥근 떡 두 개를 쌓고 그 위에 귤과 꼬치에 낀 곶감 등을 장식한다. 이것을 가가미모치(鏡?)라고 하는데, 이름의 근원은 삼종신기(三種神器)에서 비롯된다. 삼종신기란 일본신화에서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그 손자 호노니니기를 지상으로 내려 보낼 때 준 세 가지 물건인데 거울, 옥구슬, 신검이 그것이다. 둥근 모양의 떡은 거울 모양의 떡이라는 뜻이다. ‘가가미’는 거울을 말한다. 삼종신기 중 옥구슬은 귤, 창은 꼬치 곶감이 그것을 상징한다.

가가미모치 역시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월 11월 또는 15일이나 20일에 먹는다. 이때 칼로 자르지 않고 나무망치나 손으로 쪼갠다. 칼을 쓴다는 것은 할복을 연상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자른다’거나 ‘깬다’는 단어를 피하고 ‘열다(開く)’는 단어를 고집하면서 이것을 ‘가가미 비라키(鏡開き)’라고 한다. 이 떡으로 단팥죽, 떡국 같은 것을 끊여서 먹는다.

진정한 한해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신을 위한 행사는 이제 끝났다. 인간들이 인간들을 위한 시간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 신도의 나라 일본에서도.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