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어르신 운전중!

초보운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초보운전임을 알리는 문구를 달고 비실거리는 차량을 볼 때가 있다.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차선을 바꾸는데 간혹 재미난 문구에 천천히 뒤를 따르는 일도 있다.

‘초보운전! 당황하면 후진해요’
‘무한초보! 저도 제가 무서워요~’
‘아이는 취침중! 엄마는 긴장중!’
‘R아서 P해라’

애교스러운 글에서 폭소를 자아내는 글까지 다양하다. 얼마 전에는 ‘오대독자! 총각이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를 보고 살짝 옆으로 차를 대고 운전대 잡은 얼굴을 확인했다. 그런데 실망!

일본의 초보운전

일본의 초보운전자들은 자신이 초보임을 알리는 ‘초심운전자표지(初心運?者標識)’라는 것을 부착해야 한다. 왼쪽 반은 노란색, 오른쪽 반은 초록색을 한 화살모양 표지인데 마치 어린잎과 같은 모양이라 일명 ‘어린잎(若葉) 마크’라고도 불린다.

도로교통법상, 면허취득 1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반드시 이것을 차량 앞뒤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할 의무가 있다. 잘 보이는 위치란 지상 0.4m~1.2m임을 명확하게 지시한다. 초보자들 중에는 간혹 자신이 초보라는 사실이 멋쩍은지 부착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의무위반에 해당하므로 벌점 1점 벌금 4000엔이 부과된다.

‘초보이니 운전이 서툴러도 너그러이 봐주기 바란다’는 뜻이므로 주변의 차는 이것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위험방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행하고 있는 차량을 옆에서 바짝 따라붙는다거나 끼어들기를 하면 역시 벌점 1점, 벌금은 차량 크기에 따라 다른데 중대형차는 7000엔이 부과된다.

고령운전자 표지

최근에는 초보운전을 알리는 글만이 아니라 ‘어르신 운전중’과 같은 글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일본은 고령운전자에 대한 표지도 있다. 70세 이상의 어르신들 중 신체기능의 저하가 운전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 차량의 앞뒤에 이것을 부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의무가 아니므로 벌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단 주변 차량은 초보운전자에 대한 것과 같은 벌금과 벌점이 부과된다.

재미난 것은 표시의 디자인이다. 1997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 왼쪽 반은 오렌지색, 오른쪽 반은 노란 색을 한 나뭇잎 모양의 표시였다. ‘어린잎 마크’와 쌍을 이룬다고 ‘단풍 마크’라고 하고 또는 ‘실버 마크’, ‘고령자 마크’라고 한다. 그런데 혹자는 이것을 낙엽 또는 마른잎이라고 했다. ‘단풍’이 가지는 화사한 이미지와는 달리 ‘낙엽’과 ‘마른잎’이 가지는 쓸쓸한 이미지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낙엽’이라니…”라면서 분노케 했다.

단풍이라고 하면 ‘단풍든 산’ ‘단풍이 곱다’와 같은 글이 생각나지만 낙엽은 ‘낙엽 구르는 소리’ ‘나뭇가지에서 낙엽이 질 무렵’ ‘낙엽이 날리는 스산한 가을날’과 같은 글이 떠오른다. 낙엽은 고등식물의 잎이 말라서 떨어지는 현상인데, 그에 앞서 엽록소가 파괴되어 단풍이 드는 일이 많다. 그러니 무엇이나 제 때가 있다는 뜻으로 ‘단풍도 떨어질 때에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단풍이나 낙엽이나 다르다고도 같다고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만 50에서 69세까지를 실년(實年)이라고 한다. 결실을 맺는 시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만 70이 넘으면 성숙했다는 뜻으로 숙년(熟年)이라고 한다. 그러니 ‘낙엽’ 이란 단어와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2011년 새롭게 고안된 것이 네잎 클로버에 하얀 S자를 넣은 ‘네잎 클로버 마크’이다. 현재는 둘 다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미치겠지요? 저는 환장합니다’와 같은 기발한 문구를 접할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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