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우류좌사(右流左死)를 아십니까?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면 관중과 포숙,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면 오나라의 왕 부처,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유비·관우·장비와 관련된 이른바 중국고사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도 ‘읽는 법’만 다를 뿐, 그 의미와 유래에 대한 이해는 우리와 같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때, ‘고쿠고(國語) 시간’ 열심히 외우고 시험을 치른 기억이 난다. 여기서 국어라 하지 않고 굳이 ‘고쿠고’라고 한 것은 ‘일본의 국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데, 여하튼 한자권의 나라인지라 이런 어려운 공부를 감수해야 했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자시간 혹은 국어시간에 한시를 비롯해서 사자성어를 공부한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너무나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이웃이지만 ‘한자’를 통해서 공유되는 지식과 정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류좌사
?

그런데 한자로 된 사자성어임에도 일본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있어서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우류좌사(右流左死)’이다. 우리나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더니 ‘검색결과가 없습니다’는 글만 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류좌사’는 남들에게 의지를 받는 영웅 혹은 신망이 두터운 사람을 말한다. 지금도 ‘학문의 신’으로 존경받고 있는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 845~903)가 우대신(右大臣, 우의정)일 때, 좌대신 후지와라 도키히라(藤原時平, 871~909)의 중상모략으로 좌천되는데, 도키히라 역시 급사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다. 좌천된 사람(右流)이나 죽은 사람(左死)이나 당대 인망이 두터웠던 영웅이라 이런 용어가 만들어진 모양인데, 아이러니하다.?

스가와라 미치자네?

9세기 말 후지와라 모토쓰네(藤原基?)는 천황을 대신해서 정무를 담당하는 ‘간파쿠(關白)’라는 직책을 만들고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니 후지와라 집안은 당대 천황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존재였다. 도키히라는 그의 아들이었는데, 모토쓰네가 죽은 후에는 좌대신의 자리에 오른다. 이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서 우대신으로 임명된 자가 바로 미치자네이다. 헤이안 시대 학자 집안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시인이자 문장가이며 철학자로서,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의 조부는 스가와라 가문의 사숙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했는데, 한때는 일본 조정에 그 출신의 인물이 100명에 달하기도 했다고 하니 만만치 않다.?

도키히라와 미치자네가 함께 중용된 셈인데, 미치자네가 훌륭한 정치가로서 명망이 높아지자 도키히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질시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황위찬탈을 음모한다는 모략으로 규슈로 좌천되었다. 901년의 일이다. 그리고 2년 후 규수에서 생애를 마감하는데,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교토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시신을 실은 우차가 잠시 가다가 멈추어 움직이지 않자, 이는 분명 미치자네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 묻고 장례를 치렀다.

미치자네가 죽고 교토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도키히라는 이름 모를 병으로 급사하고, 그의 아들들도 이유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황태자와 황태손도 병사했다. 그 중에는 도키히라의 외손이자 황태손인 야스요리오(慶?王)도 있었다. 5살 어린 나이였다. 홍수가 발생하고 헤이안궁에는 번개가 떨어졌다. 이것을 미치자네의 저주라고 생각한 조정은, 그를 신으로 모시는 신전을 그의 묘소 위에 지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다자이후덴만구(大宰府天?宮)이다.?

다자이후덴만구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천신(天神)으로 모시는 신사를 특별히 ‘덴만구(天?宮)’라고 하는데, 일본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니 다자이후덴만구가 아니라도 미치자네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며, 학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와 관련된 신사에서 오마모리(お守り, 부적) 하나 정도는 구입했을 것이다. 규수의 다자이후덴만구는 그 많은 덴만구 중 총본산이다.

지금쯤 다자이후덴만구는 매화꽃으로 온통 물들어 있을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진 6000여 그루의 매화가 꽃을 피우는 이 계절,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화는 개화시기가 다른 여러 종류가 있어서 1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즐길 수 있다. 다자이후덴만구만이 아니라 미치자네를 모시는 일본 전국의 덴만구에는 매원(梅園)이 조정되어 있고 어김없이 매화축제가 열린다는데, 이건 미치자네가 매화를 유독 좋아했기 때문이다.?

다자이후덴만구의 본전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옛 건물양식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이다. 그 앞으로 두 그루의 매화가 있는데, 본전을 보고 왼쪽에 있는 매화는 다이쇼(大正) 천황의 황후가 직접 심었다는 ‘황후의 매화’이다. 그리고 오른쪽의 매화가 그 유명한 ‘비매(飛び梅)’이다. 미치자네가 교토에서 좌천되는 날, 마당의 매화에 이별을 고하면서 읊은 시가 있다.

동풍이 불면/향이라도 보내주오/매화꽃이여/주인 잃었다고/봄마저 잊으면 되겠느냐
東風吹かば?ひおこせよ梅の花主なしとて春な忘れそ

이 시를 읊고 떠나는데, 매화는 하룻밤 사이에 교토에서 날아와 이곳 다지이후에 뿌리는 내렸다는 게 ‘비매’ 이른바 ‘날아온 매화’이다.?

영웅이란…

우리집에도 다지아후덴만구에서 가져온 ‘오마모리’가 큰 놈, 작은 놈 책상 위에 하나씩 있다. ‘학문의 신’의 힘이라도 빌려 총명해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어미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영웅들은 다들 왜 좌천되고 급사하고 아픈 삶을 살았을까. 이건 일본의 ‘우류좌사’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참 많은 영웅들이 아픈 시간을 보냈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 우리 아이들은 ‘우류좌사’이기보다는 사랑받고 사랑하는 따뜻한 삶을 살아주기 바란다.

다자이후덴만구의 ‘오마모리’도 이런 어미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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