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명탐정 코난


선물

멋진 선물을 받았다. 상자를 여는 순간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과 딸, 신랑까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명탐정 코난>이 가득 들어있다. 눈앞에 ‘73’이라는 숫자가 보이는 것을 보니 70권이 넘는 모양이다.

작년 여름 초등학생용 과학서적을 6권 번역했다. 그 책이 해를 넘기고 <Why and How 과학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이제야 출판되었다. 담당이었던 배선임 기자가 책을 보내겠다고 했고, 선물도 함께 보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워낙 야무진 사람이라 좋은 책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치 않았다. 단 ‘선물’이라는 말에 가슴을 설레면서 기다렸다. 나이가 얼마가 되어도 ‘선물’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다.

“엄마 존경해”라고 딸이 애교를 부린다. 이 말은 지난 크리스마스 친구로부터 종합과자상자를 선물 받았을 때 들은 말이다. 엄마를 존경하는 것은, 엄마도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도 조건이 있다. 지네들이 좋아하는 ‘물질’로 표현되었을 때 만이다. 여하튼 고3 수험생까지 한권씩 챙겨들고 나무늘보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명탐정 코난

<명탐정 코난>은 아오야마 고쇼(?山剛昌, 1963~) 원작의 만화다. 『주간소년 선데이(週刊少年サンデ?)』(小學館이 발행하는 일본 주간만화잡지, 1959년에 창간)에 1994년 5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지금도 꾸준히 연재되고 있다. 『주간소년 선데이』 사상 최장의 정규 연재작이다. 세계 각국언어로도 번역되어 폭넓은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영어로는 『Detective Conan』, 북미에서만은 『Case Closed』라는 모양이다. 법률적 문제 때문일 거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金田一少年の事件簿)>를 시작으로 <인형조종사 사콘(人形草紙あやつり左近)> <비밀경찰 홈즈(秘密警察ホ?ムズ)> 등 미스터리 만화 붐이 일고 있었다. <명탐정 코난>은 약 2주간 정도의 준비기간을 가지고 연재를 시작한 작품인데 이들 작품 중 가장 먼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1996년도부터 요미우리 TV에서 방송중이다. 2001년에는 ‘소학관 만화상’을 수상했다. 2003년도 47권 발매 당시 총 발행부수 1억부를 돌파했으며, 2012년 현재 코믹스 발행부수는 1억4000만부에 이르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고등학생 명탐정 신이치는 어느날 수상한 사람들이 한 사내를 협박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 조직은 신이치의 입을 막기 위해서 독약을 먹이고, 신이치는 어린이가 된다. 신이치는 아가사 박사의 도움으로 초등학생 에도가와 코난의 모습으로 가장해서 어려운 수많은 사건들을 풀어 나간다. 이야기의 축은 코난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거대한 악의 조직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인데, 사실 그것과는 상관없는 사건들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작가는 그 결말에 대한 구성은 이미 머릿속에 있다고 말한 바 있으며, 100권 이내에 끝내겠다는 말도 했었다.

작가의 출생지 돗토리현 도하쿠군 호쿠에이쵸(鳥取?東伯郡北?町)에서는 코난을 마을의 상징물로 선정하고 동네 곳곳에 코난의 동상을 세웠다. 2007년에는 ‘아오야마 고향관(?山剛昌ふるさと館)’도 개관했다. 재미난 것은 이 지역 관청에서 발행하는 ‘주민표’의 가장자리에 코난의 일러스트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인기 짱이다. 더 재미난 사실은 이것을 복사하면 원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코난의 그림이 용지 중앙에 커다랗게 드러난다. 주민표는 복사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라 위조방지를 위한 것이란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재미난 일을 안 해볼 수는 없다. 재미삼아 해서는 안 되는 복사를 반드시 해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주민표 수수료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대개 200~400엔이라고 한다. 코난의 그림이 들어있는 요술용지의 호쿠에이쵸의 주민표는 300엔이란다.

아오야마는 미술학과 재학중 ‘만화연구부’에서 활동하다가 데뷔했는데, 그의 대표작으로는 <코난> 외에도 <YAIBA>, <매직 괴도(まじっく快斗)> 등이 있다. 한때 결혼도 했었다. 그 상대는 코난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 다카야마 미야미(高山みなみ)란다. 3년 정도 살다가 헤어진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에게 코난은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코난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매우 과학적이다. 역시 아오야마는 초등학교 때 과학을 잘 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단 수학은 ‘양’ ‘가’ 수준이었지만….

한국에서는 1997년부터 서울문화사가 독점으로 단행본을 번역해서 발간하고 있다. 내가 선물 받은 책 중 <명탐정 코난 volume2>을 보니 1997년 1판 1쇄 발행~2010년 12월 1판 35쇄 발행이다. 국내에서도 시리즈 판매부수가 350만부 이상을 넘는 베스트셀러 작품임을 실감하는 숫자다. 애니메이션도 투니버스에서 방영중이다.

고3 우리아들은 코난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1994년생이다. 코난과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데, 코난은 아직 어린이 그 모습이고 여자친구 란도 고등학교 2학년 그대로이다. <명탐정 코난>의 세계는 그 시간에서만 움직인다. <코난>을 한 권씩 들고 사라진 우리집 나무늘보들, 밥 때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One comment

  1. 덕분에 교수님과 가족분들이 행복하셨다니, 덩달아 저도 기쁘네요. 교수님 덕분에 좋은 책 무리없이 잘 진행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날씨가 후텁지근한 게 장마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인가 봅니다. 그래도 이번 주말부터 내리는 비는 어느 때보다 반갑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재밌는 일본이야기도 늘 응원하면서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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