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일본남자와 한국여자


양재에서 과천으로 가는 길목에는 꽃들이 즐비한 비닐하우스가 나를 유혹한다. 나는 그들의 나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그 재잘거림에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다. 긴 겨울을 벗어난 어느 날. 세상의 모든 나무가 꽃을 피웠다고 착각하는 눈부신 4월 어느 날. 나는 예쁜 색을 가진 꽃을 갖고 싶었다. 겨울 내내 참아온 이야기를 담고 기지개를 펴는 그런 꽃을 갖고 싶었다.

두 개의 화분

비닐하우스 안 좁은 길을 걸으면서 이집 저집 꽃들을 구경하는데, 두 개의 화분이 앙증맞게 나를 맞이한다. 같은 모양인데 하나는 노란색 꽃을, 하나는 핑크색 꽃을 한 송이씩 피우고 있다. 카라꽃을 닮았다. 작지만 굴곡 없이 뻗은 줄기와 꽃은 우아하고 청초하다. 쭈그리고 앉아서 살짝 손을 대는 나를 보고 주인이 뛰어나왔다. 새벽에 누군가가 한꺼번에 다 가져가서 2개만 남았단다. 원래는 하나에 만원인데 특별히 8000원에 주겠다고 한다. 여기서는 좀처럼 깎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주인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사가지고 나왔다.

집에는 마침 빈 화분이 있었다. 허브를 담았던 화분인데, 관리를 잘못한 탓인지 실내의 따뜻한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노란색 꽃과 핑크색 꽃을 하나의 화분에 옮겨 심었다. 참 곱다. 서둘러 나오는 바람에 꽃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름이야 뭐 그리 중요하랴 예쁘면 그만이지.

우리집에서 두 달이 지났다. 꽃은 시들었다. 분명 꽃을 잘 피울 것이라 했건만, 우리집에서는 희망사항일 뿐 무성한 이파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아침 물을 주다가 처음 알았다. 이파리 모양이 다르다. 같은 모양의 꽃을 피운 두 개가 화분은 분명 같은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이것을 사다 내 손으로 직접 심고 가꾸었는데 난 왜 여태 몰랐을까. 이리도 눈썰미가 없었던가. 하나는 길고 가는 이파리가 밑으로 축축 쳐져있고, 또 하나는 하트 모양의 반짝이는 이파리가 하늘을 향해 빡빡하게 뻗어 있다. 같은 초록이라는 것 외에는 너무나 다른 모양이다. 분명 같은 모양의 꽃을 피웠건만 시들어버린 지금에야 설명할 길이 없다. 혹 언젠가 다시 꽃을 피울 날만 기다릴 뿐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것도 이런 일이 아닐까.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둘은 분명 잘 어울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콩깍지가 씌였다는 게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살다보면 내가 보았던 것은 상대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 얼마나 다른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일본남자 ♡ 한국여자

일본사람과 결혼한 친구가 있다.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결혼한 경우도 있고, 한국에 온 일본인과 결혼한 경우도 있다. 제3국, 그러니 캐나다나 호주 등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만나서 결혼한 커플도 있다. 물론 잘~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다.

불행히도 최근에 이혼한 친구가 있다.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이라 양국을 오가면서 마음 고생한 스토리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안쓰럽기만 하다. 뭐가 그리도 문제였을까. “너 신랑 앞에서 청국장 끊어먹었지?” 웃자고 하는 말에 피식 웃는다. “그 정도 임팩트가 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라는 말에 다들 소리 내어 웃었다. 마늘이 많이 들어간 파김치나 큼큼한 냄새를 풍기는 청국장 같은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처음부터 주의하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혹시 토마토에 소금 찍어 먹는 거 봤냐고 한다. 우리야 설탕 찍어 먹는데 소금 찍어 먹는 거야 어떠냐고 했더니, 간혹 간장도 찍어 먹는단다. 수박도 꼭 그렇게 먹는단다. 그래야 단맛이 살아난다면서. 보리차에는 설탕을 타서 마시는 모양이다. 느끼하게시리. 라면도 문제였다. 라면을 끓일 때 가루스프와 파는 반드시 다 끓은 다음에 넣어야 한단다. 국물의 깊은 맛을 위해서 처음부터 파를 넣어서 끓이는 내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요리를 하다가 국자로 떠서 간을 보는 것도 흠이었다. 일일이 접시에 들어서 간 보다가 언제 밥 다 하라고. 빨래 삶는 것도 이해를 못했다. 눈부시게 하얀 속옷은 좋아하면서, 부엌에서 요상한 냄새를 풍기면서 빨래를 ‘요리’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다.

특히 젓가락 사용법. 밥을 먹다가 여럿이 같이 먹는 접시의 반찬을 개인 앞접시로 옮길 때 젓가락을 뒤집어서, 그러니 손잡는 굵은 부분으로 음식을 집어서 앞접시로 옮긴 다음 다시 뒤집어서 젓가락질을 하고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절차에 대해서 알고 있었냐고 물었다. 물론 알고 있었다. 내 입에 들어간 물건이 여럿 사람이 먹는 음식에 닿는 것에 대해서 일본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하다. 그렇다고 항상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니 어려운 자리에서는 그런 격식을 따라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손잡았던 부분으로 음식 잡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라면서 나를 째려본다.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

어찌 문제가 그것 만이었겠는가. 우리한테는 말하지 못하는 더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일본남자라서 한국여자라서만은 아니다. 우리는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가 없다. 우리집 베란다의 저 화분도 이제 꽃이 없으니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도 문제없이 어우러져 있다. 하나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고 하나는 물을 적게 먹는 것이라면 어느 쪽 하나는 시들어버렸을텐데. 비록 꽃은 피우지 않고 있지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둘은 같은 환경 속에서 살만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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