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까칠남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르네상스의 ‘까칠남’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에 ‘최후의 심판’을 그린 뒤 밀린 월급을 달라는 독촉장을 보냈고, 그 독촉장이 로마교황청 비밀서고에 소장되어 있다니 참으로 재미난 이야기가 아닌가.

바티칸 로마교황청에는 8~20세기의 성서사본과 공문서, 편지 등 가톨릭과 관련된 각종 기록을 소장하고 있는 비밀서고가 있는 모양이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무척 매력적인데, 바티칸은 서고 개설 400주년을 맞이해서 지난 2월29일 로마의 카피톨리노 미술관에서 약 100점의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교황청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모양이다” 등 세간에서는 별별 소리가 난무한데, 여하튼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갈릴레이 종교재판의 기록, 헨리6세와 캐서린 왕비의 이혼문서, 마르틴 루터의 파문 조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기 전에 쓴 글, 일본 쇼와(昭和)천황이 교황 피우스 11세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 등이 공개되었다. 어느 것이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것들인데, 역시 나를 웃게 만드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월급 독촉장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 알려진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은 교황의 공식예배당으로 15세기에 건설되었고, 1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과 9개의 장면으로 구성한 천장화로 유명한 곳이다. 이 작품들은 세기의 대작이라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단 하나, 아쉽게도 회화를 배우지 못한 탓인지 당대의 라이벌 라파엘 작품에 비해 채도는 한참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최첨단 기법을 동원해서 그림을 덮고 있던 그을음과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을 제거해서 본래의 색채와 형태를 되살리자 그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을 매료했고, 미켈란젤로의 색감에 대해서 그 누구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시스티나성당의 복원사업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와 벽화는 그을음으로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천장화 ‘천지창조’의 아담이 검게 보여서 최초의 인간은 흑인이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왔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바티칸은 전세계의 방송국과 영상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1982년 NHK는 시스티나성당의 복원작업 영상기록과 독점 방송권을 300만 달러(당시 환산으로 약 7억 엔)에 계약하고 복원을 시작했다.

영국태생의 가톨릭교회 대사교이자 조지(上智)대학의 학장이기도 했던 요셉 피타우(Joseph Pittau)가 일본에 거주했을 당시, NHK의 사장인 고바야시 요소지(小林?三次)가 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는 성직자로서 철저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외치면서도 전쟁에 희생한 사람들의 참배를 용인하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분이다.

그가 ‘가톨릭 신자도 아닌데 어찌해서 가톨릭교회 복원사업에 돈을 쓰냐’고 질문하자, 고바야시 사장은 ‘2000년에 걸쳐서 다양한 예술을 지켜온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딸아이가 가톨릭계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고도 했다고 전해진다.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독재적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래서 이런 대사업도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 요셉 피타우 씨의 소견이다. 1982년 4월부터 12년에 걸쳐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가끔 시스티나성당의 NHK 스태프를 찾아간 모양인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천장화를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사실 복원사업이 시작되자 구미에서는 ‘왜 하필이면 NHK이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의 명화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명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재테크 수단으로 명화를 사서 은행 창고에 보관하는 그런 못쓸 짓을 한다는 비난을 받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들 어찌하랴. 바티칸이 전세계를 향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것을 받아들인 유일한 곳이 NHK이니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로마를 방문했을 때,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을 안내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우리 일행 역시 ‘왜 하필이면 일본이야’라는 유쾌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NHK의 허가 없이는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자, 다들 “짜식들, 쫀쫀하기는…”라면서 몰래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사실 촬영을 금지하는 것은 촬영권이 NHK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플래시의 빛이 프레스코 화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일 게다. 어쨌든 이것이 일본에 대한 우리 마음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리라….

2005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모나리자 단독 전시실(Salle de La Joconde)을 만들 때도 481만 유로(약 6억7000만 엔) 전액을 일본 민간방송국 NTV가 희사했다. 작업은 2001년부터 시작되어 4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문화는 이렇게 지켜지는 것이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한마디 전하고 싶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의 벌거벗은 인물들의 성기(性器) 가리개가 그토록 선명한 아름다운 색이라는 사실을 NHK의 도움 없이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미켈란젤로는 월급을 제대로 받았는지 궁금하다.

One Response to [고선윤의 일본이야기] 까칠남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 이부용 March 10, 2012 at 8:12 pm

    교수님 재미있고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
    로마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끔 nhk의 미술관 안내 프로그램을 보면 참 잘 찍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글을 읽고 보니, 여러가지 준비와 투자가 있었던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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