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각자내기…못다한 이야기
이야기4
친구F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 G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나와 F는 꽃바구니를 하나 준비하고 기다렸다. 물론 꽃값을 똑같이 반으로 나누어서 지불했다.
자전거를 타고 마중 나온 G는 반가이 맞이하면서 준비한 것이 없으니 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사가자고 했다. 마켓에서 각자 먹을 것을 담았다. 나는 스시를, F는 가쓰돈을, G는 고로케 도시락과 과일샐러드 그리고 마실 것을 담았다.
카운터에는 나는 순간 당황했다. F가 먼저 자신이 선택한 가쓰돈을 계산했다. 집주인 G는 “과일과 마실 건 내가 살게”라면서 엄청 생색을 낸다. 덩달아 나도 내가 먹을 스시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지갑에서 1원짜리까지 챙겼다.
이야기5
대학생 때의 일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H와 나는 요코하마 항구가 보이는 언덕을 걸었다. 전망 좋은 곳에 H의 이모가 경영하는 고급레스토랑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밥을 먹었다. H의 이모는 우리에게 밥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H는 무척 난처해했다. 오후 데이트가 어려울 정도였으니, 얼마나 난처해했는지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 조카가 부자 이모네 가게에서 밥 좀 얻은 먹은 게 이리도 불편할까, 당시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나 역시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내 밥값만은 내가 내는 게 정답이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6
나에게도 한때 일본남자친구가 있었다. 대학원생 I이다.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여름방학에만 만나는 견우와 직녀 같아서 그래서 더 가깝게 느끼는 사이였다. 생일이면 앙증맞은 손거울 하나 행여나 깨질까 포장지로 칭칭 감아 베개만 하게 만들어서 보내오곤 했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마침 스코틀랜드로 여행할 기회가 있어서 나는 I에게 일본에서 발행된 가이드북을 부탁했다. 꼼꼼한 성격의 I는 하드보드지로 야무지게 싼 책을 보내왔다. 영수증과 계좌번호도 잊지 않았다.
이 사실이 가난하고 외로웠던 연수생에게 어찌 그리 매몰차게 느껴졌는지. 한달 후면 귀국하는데 말이다. 만약 이 일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국제결혼을 하고 I의 마누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이렇게 작은 일들이 모여서 커다란 바퀴를 만들어가는 것이겠지.
이야기7
아들 녀석이 친구랑 도쿄나들이를 한단다. 나는 예쁜 일본여학생이랑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거들먹거렸다. 마냥 좋단다. 친구 J의 딸 K가 게이오 대학교 3학년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J는 한때 미스재팬을 꿈꾼 미인이다. 비록 지역대회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그러니 그 딸은 얼마나 예쁘랴.
귀국하자마자 “K 예쁘지?”라고 물었더니, “그 엄마가 더 예쁘던데”란다. 그리고 J와 K가 두 머슴애를 데리고 요코하마, 가마쿠라, 게이오 대학까지 안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지하철을 이용해서. “차비는?”이라는 말에 “당연히 아줌마가 냈지. 밥값도 찻값도 그리고 헤어질 때는 호텔방에서 먹을 빵도 사주시던데”
“아이고머니! 이 일을 어쩌나~”라면서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J, 기다려라. 내가 주머니 두둑하게 채워서 너 만나러 가마. ‘오고가는 밥값 속에 피어나는 우정’ 이런 말을 하는 건 역시 내가 올드해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