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봄이 오기가 이리도 힘든가


봄이 오기가 이리도 힘든가. 4월 하늘에 계절을 거부하는 눈이 내렸다. 이것도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란다.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제트기류가 약해져 차가운 공기가 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말이다. 제트기류란 지상 약 10km(대류권 상부 또는 성층권의 하부)에서 수평으로 부는 강한 편서풍으로 찬 공기를 극지에 가둬놓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단다.

우리나라는 사계가 있는 나라라 아무리 춥고 시린 겨울이라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기다렸고,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얼어붙은 냇가의 물이 다시 흐르고,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봄은 세상만물에 생명이 깃드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와 같은 중위도(中緯度) 상에 위치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사계에 대한 정서적 동질감이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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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킨와카슈

교토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헤이안 시대(794~1192) 초기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한시가 유행했다. 5·7·5·7·7 음률을 가지는 일본 고유의 시가 와카(和歌)는 남녀가 사적으로 읊는 것으로 공적으로는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9세기 후반 가나문자가 발달하고 일본 고유의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또한 귀족들 사이에 노래 경합이 유행하면서 와카가 크게 발달했다.

905년 다이고 천황(醍?天皇)의 칙령으로 기노 쓰라유키(紀貫之), 기노 도모노리(紀友則), 오시코우치노 미쓰네(凡河?躬恒), 미부노 타다미네(壬生忠岑) 4명의 편자는 8세기에 편찬된 <만요슈(萬葉集)>에 수록되지 못한 것에서부터 그 시대의 와카까지 약 천백 수를 모아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를 완성했다. 이른바 국가차원에서 가집이 편찬된 셈이다. 이로 말미암아 와카는 공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훗날 일본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킨와카슈>의 문학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권두를 장식한 ‘가나서문(?名序)’은 최초의 문학론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20권으로 나눈 부다테(部立, 가집의 분류)는 이후 편찬되는 가집의 기준이 되었다. 천백 수나 되는 와카를 모아서 나열할 때 어떤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맛깔나게 나열하고 편집하는가가 편자의 능력이다. 가나다순, 작가의 연대순 등 여러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고킨와카슈>의 제1권에서 제6권은 ‘사계의 노래’로 엮어져 있고 이하 ‘축하의 노래’, ‘이별의 노래’, ‘여행의 노래’, ‘사랑의 노래’, ‘죽은 자를 위한 노래’, ‘잡가(雜歌)’ 등으로 분류된다. 제1권 ‘봄노래 상’, 제2권 ‘봄노래 하’는 봄의 노래를 나열하고 있는데, 그 순서가 기가 막히다.?

봄 노래

2 소매 적시며/떠서 마시던 샘물이/얼어있는데/입춘 날 부는/이 바람이/녹여주려나
? 袖ひちて むすびし水の こほれるを 春立つけふの 風やとくらむ

6 봄이라/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흰 눈 내린 나뭇가지에/꾀꼬리가 울고 있구료
? 春たてば 花とや見らむ 白雪の か?れる枝に 鶯のなく

9 봄 안개 일고/새싹 트는 봄날에/눈이 내리니/꽃 없는 마을에도/눈꽃이 흩날리네
? 霞たち 木の芽の春の 雪ふれば 花なき里も 花ぞちりける??

12 계곡에 부는 바람/얼음을 녹이고/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물보라는/이 봄에/처음 핀 꽃이라 하겠노라
?? 谷風に とくる氷の ひまごとに 打いづる波や 春のはつ花

25 내님의 옷/널어서 말리던 들판에/봄비가 내리네/내리면 내릴수록/들판은/더욱 푸르름을 더하구려
?? わがせこが 衣春雨 ふるごとに 野?のみどりぞ 色まさりける   

26 버드나무/실을 꼬아놓은 것처럼/휘날리는 봄날/꽃방울이 터지듯/피어나네
?? 靑柳の いとよりかくる 春しもぞ みだれて花の ほころびにける

입춘이라면 2월, 아직 추운 날임에도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조금씩조금씩 시간은 봄으로 다가가는데, 봄이 오기가 이리도 힘든가. 때 아닌 눈이 내리고, 조바심 가득한 사람은 이것을 꽃이라 우긴다. 드디어 봄비가 내리니 들판은 푸르게 변하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며 꽃망울이 터진다.

이렇게 와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어 있다. 노래의 내용을 보면 그 노래는 어디쯤 들어가야 하는 노래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어디쯤 와 있는지 그 시간의 자리가 확실하게 보인다. 제2권 ‘봄노래 하’ 끝자락에서는 그리도 더디게 온 봄을 보내야 하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129 꽃잎 떨어진 물길/따라 올라와봤지만/산에도/봄은/이미 가버렸네
???? 花散れる 水のまにまに 尋めくれば 山には春も なくなりにけり

133 비를 맞으면서도/꽃을 꺾는다/봄도/얼마 남지 않았다고/생각하기에
???? ぬれつつぞ 强ゐておりつる 年のうちに 春は幾日も あらじと思えば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천 년 전 그 옛 시간에도 이렇게 안달했다. 봄이 오기가 이리도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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