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마사코 빈, 네덜란드 가다

네덜란드 새 국왕

왕실 이야기는 언제 어느 때나 황홀하다. 왕과 왕비가 탄 마차가 지나가고 가볍게 흔드는 손인사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공주들의 화려한 드레스, 우아한 걸음걸이, 옅은 미소는 어린 시절 이불속에서 맡은 동화책 냄새 그대로다.

4월30일 왕정 200주년을 맞이하는 네덜란드에서는 왕세자 빌럼-알렉산더르(46)가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 나라는 선대 생존 시 양위하고, 양위한 여왕은 다시 ‘공주’로 호칭되는 전통이라 75세의 베아트릭스 전 여왕은 이제부터 공주라 불린단다.

새 국왕은 항공기 조종사이자 만능 스포츠맨이며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멋진 남자다. 게다가 소탈한 성격이라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네덜란드의 공화주의자들은 국왕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받는다고 삭감할 것을 요구하고, 의회는 왕의 정치적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지난해 통과시켰다. 더 나아가 유럽의 군주제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화사한 봄날의 즉위식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일본 왕세자 부부 11년만의 공식외국방문

일본은 지금 네덜란드 국왕 즉위식 이야기를 하면서, ‘적응장애’로 10년째 요양 중인 마사코(雅子·49) 빈이 나루히토(德仁·53) 왕세자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데 대해서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찍이 네덜란드 국왕 즉위식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받았지만 마사코 빈의 참석 여부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실 직속기관인 궁내청이 “행사준비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니 참석 여부를 빨리 결정해 달라”며 조용히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생중계했다. 이른바 왕실권위유지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궁내청이 왕세자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셈이다. 이로 말미암아 왕세자 부부와 궁내청의 갈등 운운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왕세자빈은 2003년 12월 대상포진을 이유로 장기요양을 시작했고 2004년 7월 우울증의 일종인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후 해외방문은 물론이고 국내행사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고부간의 갈등, 아들을 낳지 못한 스트레스 등 여러 말들이 분분하다.

막시마 왕비와 마사코 빈

여하튼 마사코 빈의 네덜란드 방문은 최고의 화젯거리다. 우여곡절 끝에 방문을 결정한 모양인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막시마 왕비(41)였다. 즉위식을 앞두고 막시마 왕비(당시는 왕세자빈)는 마사코 빈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즉위식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왕비는 결혼 전 은행원으로, 마사코 빈은 외교관으로 활약한 국제적 커리어우먼이었던 고로 두 사람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뿐이겠는가. 평민출신의 왕세자빈으로, 딸아이를 둔 엄마로서도 통하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한다.

사실 마사코 빈과 네덜란드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적응장애의 진단을 받고 3년이 지난 2006년 베아트릭스 여왕의 초청으로 왕세자 일가는 2주간 네덜란드에 체류한 적이 있다. 물론 마사코 왕세자 빈의 요양이 목적이었다. 이 때 네덜란드 왕실과 친교를 가졌던 모양이다. 한편 마사코 빈의 아버지는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로 네덜란드에서 근무하고 있다.

왕실의 앞날

일본은 마사코 빈이 병을 이유로 왕실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세금 도둑’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인터넷상에 난무하다. 일각에서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물러나고 동생에게 왕세자 자리를 양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11년만의 마시코 빈 네덜란드 외유는 왕실의 앞날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봄바람 타고 많이 이야기들이 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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