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해서는 안 되는 일

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 사우나에는 습식사우나와 건식사우나가 있다. 나는 유독 습식사우나를 좋아한다. 거기서는 소금 마사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을 한 움큼 쥐고 들어가 온몸을 쓱쓱 문지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 중 내 등을 시원하게 문질러 주는 이도 있다. 나도 그의 등을 소금으로 문질러 준다.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우나 안에서 소금 마사지를 금합니다’라는 글이 붙었다. 뭐 때문일까. 사우나 안에 샤워기도 배수구도 있으니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건식사우나 안에서 소금 사용을 금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추측을 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오늘도 소금을 한 줌 쥐고 사우나 안으로 들어간다.

세상에는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누가 생각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들도 있지만, 어떤 규칙이나 약속을 정하고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못하게 하는 일들도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그게 너무 많다보면 꼭 지켜야 할 일인가 조금은 무시해도 될 일인가 멋대로 생각하게 된다.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다보면 ‘80’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다. 간판에서도 도로 바닥에서도. 시속 80km가 제한속도라는 말이다. 더 이상의 속도를 내면 감시카메라 같은 것에 찍혀서 벌금을 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70’이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들어온다. 순간 내가 착각을 했나보다는 생각을 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다시 보니 ‘안전운행 70’이라고 적혀있다. 즉 제한속도는 80km인데 더 안전하게 70km로 달리는 것을 권장한다 뭐 그런 뜻인 것 같다. 순간 화가 났다. “친절도 하시지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입을 뾰족 내밀고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속도를 올린다.

뉴욕에서

뉴욕에서 한달 가량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서머스쿨을 마치고 돌아오면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고 맨해튼으로 놀러가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커다란 지도를 꺼내고 블록을 정해서 하루는 이스트빌리지, 하루는 그리니치빌리지, 하루는 센트럴파크 주변의 박물관, 성당, 시장 등을 돌아다녔다.

그날은 어퍼 미드타운에 있는 센트럴패트릭성당을 찾았다. 지금껏 미국에서 가장 큰 가톨릭성당으로 1878년에 완공된 아름다운 건물이다. 평일 오후인지라 성당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맨해튼을 내려 보기 위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몇 층이 최고층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하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다락방이었다. 사방으로 열린 창을 통해서 맨해튼을 바라보았다. 마침 저녁놀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다락방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뚜껑이 열려 있었다. 우리 아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엘리제를 위하여’ 그 다음은 신나게 ‘스팅’. 그 어떤 연주회보다 좋은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은 불안했다. 분명 누군가 와서 우리를 내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까지만이라도 이 순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아이를 말리지 않고 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소부 차림의 흑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아이는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연주했고,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면서 “굿”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잘은 모르지만 이게 ‘미국의 자유’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오래간만에 피아노에 앞에 앉은 아이는 한참 즐기다 이제는 가잔다. 나는 주변의 의자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물티슈를 꺼내서 피아노의 먼지를 닦았다. 수건까지 꺼내서 마지막 먼지를 훔쳤다. 나는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표시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일본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항공사에서 마련한 나리타 공항 부근의 호텔로 안내되었다. 더운 날이라 아이들이 수영장으로 가자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영복을 챙기고 호텔수영장을 찾았다. 그런데 뭐 그리 요구하는 게 많은지. 모자가 없으면 입장이 안 되고, 호텔 수건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되고, 초등학생은 반드시 부모가 같이 있어야 하고…, 이야기 듣다가 그냥 포기하고 나왔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안 된다고만 말하는 예쁜 호텔리어가 너무 얄미웠다.

일본은 지켜야할 규칙이 너무 많다. 잔디밭에 들어가도 안 되고, 복도에서 뛰어도 안 되고, 큰소리로 떠들어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된다고 하니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되기도 한다.

몇주 전 ‘휴대전화와 지하철 에티켓’이라는 글에서 일본의 휴대전화 에티켓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이렇게 예의바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남아 국가를 점령하려 했던 것은 당시 유럽 열강들의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함이었을까요?’라는 댓글이 붙었다. 안 되고, 안 되고, 안 된다면서 지키는 그들의 에티켓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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