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착하다’와 야사시이’
스포츠센터 로비에 자가용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세일 한단다. 숫자를 확인했더니 ‘억’이다. 다시 동그라미를 세어보니 일·십·백·천…, 역시 천이 아니라 억이다.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비싸기도 비싸다. 내 차는 여기서 동그라미가 하나 빠지니, 10분의 1 가격이다. 그렇다고 내 차가 10분의 1 크기인 것도 아니고, 10분의 1 속도로 달리는 것도 아니다. 크기야 조금 작지만 그렇다고 운전석에 내 엉덩이가 끼는 것도 아니다. 바퀴가 4개, 문짝이 4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순간 나는 내 차가 참 ‘착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 착한 사람?
형용사를 공부할 때면,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같은 질문을 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하다”라고 답하게 한다. 어려운 질문이 아님에도 학생들은 당황하고 한참 말을 하지 못한다. 물론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하는 것인데도. 아마도 평상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내가 가지고 있는 너무나 많은 ‘나’를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들먹이면서 애당초 ‘나’ 자신을 모르는데 뭘 하겠냐면서 면박을 주고 다그치면, 그제야 말문이 트인다. 한 학생이 “나는 멋지다”고 하니 “우~”하는 야유가 들리고 모두가 웃는다. 이어서 크다, 작다, 예쁘다, 희다, 재밌다, 착하다 등등의 단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런 단어들을 가지고 일한사전을 뒤져가며 일본어 형용사를 공부한다.
참 많은 학생들이 ‘나는 착하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안다. 그런데 이것을 일본어로 바꾸어서 말하려면 참 애매하다. 사전에는 그냥 ‘좋다(いい)’고만 나와 있다. 딱 맞는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너그러운 마음, 배려하는 마음,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조금은 손해도 감수하는 행동, 어리석음, 영악하지 않음 등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일본어로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분명 긍정적이고 좋은 단어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뚜렷한 특징이 없을 때, 별반 형용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을 때 쓰는 단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안다.
요즘 ‘착하다’는 단어는 차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뚱맞게 쓰이고 있다. ‘얼굴이 착하다’, ‘몸매가 착하다’, ‘가격이 착하다’ 등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특별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어쨌든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몸매가 착하다는 건 마를린 먼로와 같은 몸매를 말하는 것일까 오드리 햅번과 같은 몸매를 말하는 것일까?” 라고 질문했더니, 학생들은 둘 다 모르는 사람이란다. 20대에게 세대가 다른 옛사람으로 보일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허나, 착한 몸매는 가질 것 다 가진 풍만한 마를린 먼로와 같은 몸매가 아니라 빈약한 속에서 우아함을 드러내는 오드리 햅번과 같은 몸매를 말하는 것일 거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착한 차를 몰고 ‘야사시이’ 음악을 들으며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착하다’고 표현한다면, 일본 친구들은 아마도 ‘야사시이(やさしい)’라는 단어로 자신을 표현할 것이다. 이 단어 역시 친절하다, 상냥하다, 온화하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등등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즉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좋은 인상을 주는 말이기는 하지만 딱히 두드러진 개성 없이 그냥 좋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우리말에서 딱 부러지게 바꾸어 쓸 수 있는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야사시이’도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다. ‘지구에 야사시이 이콜로지(地球にやさしい エコロジ?)’ ‘몸에 야사시이 음료수(?にやさしい?み物)’ ‘야사시이 바람(やさしい風)’ ‘야사시이 삶(やさしい暮らし)’과 같은 단어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친절하다’ 혹은 ‘상냥하다’고 번역하는 것으로는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미지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에 야사시이 이콜로지’라면 지구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친환경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자극적이지 않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음료수, 차갑지 않고 기분 좋은 바람, 바쁘지 않고 여유롭고 자연에 가까운 삶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바꾸어 쓸 수 있는 우리말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느낄 수 있다.
일한사전, 한일사전을 들고 단어를 찾아서 바꾸어 적는 것으로 일본어가 한국어가 되고, 한국어가 일본어가 되지는 않는다. 단어는 각자 그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을 알아가는 과정이 일본어를 공부하는 과정이고, 더 나아가 일본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착한 차를 몰고 ‘야사시이’ 음악을 들으면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