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덧니 사랑

자정이 다 되어서 아들놈이 친구 셋을 데리고 왔다. 편의점 비닐봉지에 맥주가 잔득 담긴 걸 보니 어디서 마시다 술이 모자라 집으로 자리를 옮긴 모양이다. 이놈들 중에 우리 사윗감도 있을 테니…, 이런 생각하면서 오이를 썰고 소시지에 땅콩까지 한 상 차려서 방으로 가지고 갔다. 마침 속초에서 들고 온 마른오징어도 있어서 고얀 냄새를 피우면서 구워 오빠 방에 대령하라고 시켰다.

잠시 후 우리 딸 오징어 다리 하나 쭉쭉 빨면서 “지네가 뭐 트랜스포머야?” 투덜투덜 들고 들어 간 오징어 그대로 들고 나온다. 이유인 즉성 우리 아들 포함해서 머슴애 넷 다 치아 교정 중이란다. 그렇다. 외모가 중요한 시대이니, 대학가면 모두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고 치아 교정은 기본이겠다.

군대를 가니 어쩌니 인생의 무게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는 얼굴에는 불그름한 여드름 자국이 그리고 이에 꼬아 맨 철사 줄이 번쩍 빛난다.

덧니

황석영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흐르지 않는 강>에 ‘웃을 땐 덧니가 살짝 드러나면서 보조개가 들어가, 어딘지 일본여자 같더라고’라는 구절이 있다. 일본사람하면 덧니, 덧니하면 일본사람이 연상되는 건 나만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일본 친구들은 뻐드렁니나 덧니에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영화 <비밀> <굿바이>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히로스에 료코(廣末?子)도 덧니를 가진 예쁜 연예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소개하면서 ‘완벽한 얼굴에 덧니! 최고입니다’는 문구는 항상 따라다녔다. 지금은 교정을 해서 덧니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니 어쩌니….

‘귀여운 여자에게 덧니는 필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덧니를 부정하기 보다는 매력의 포인트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의 미’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치 고양이와 같은 덧니를 가진 캐릭터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보조개가 있다고 우리는 이것을 없애기 위한 수술을 굳이 하지 않는다. 일본 친구들에게 덧니는 이 정도의 개념일 것이다. 굳이 이것을 빼고 교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웃을 때마다 살짝살짝 드러나는 덧니는 자신의 매력의 하나로 여긴다. 덧니를 교정하려 했더니 남자친구가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만 알았지 덧니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는 처음 알았다.

덧니 성형

최근 1~2년 사이에 재미난 형상이 나타났다. ‘덧니 성형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덧니를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덧니를 만들어서 붙이는 성형이 유행이란다. 참 희한하기도 하지. 가짜 덧니를 만들어서 붙이는데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이 있고 그 비용도 2만~5만 엔으로 만만치 않다. 치아 건강에도 좋지 않을 텐데 말이다.

덧니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치과에서는 홍보를 위해 3명의 여고생이 시술을 받으면서 노래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띄웠다. 그리고 그들은 ‘TYB48’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TYB = Tuke Yae-Ba(付け八重?, 붙이는 덧니)에서 가지고 온 이름이다.

덧니에 대한 애정이 이 정도면 더 이상 뭔 말을 할 수 있을까. 여하튼 덧니는 이갈이 시기를 놓쳤거나 입이 너무 작으면 생기는 것으로 젊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최근 귀엽고 어리다는 청순미에서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덧니 열풍’이 고조되었다. 이것은 어린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과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서구로 유학을 준비하면서 덧니를 교정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일본 친구도 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교육할 돈이 있으면 먼저 이를 손본다’는 말을 하고, 프랑스 몇 년째 살면서 덧니를 본 적이 없다는 등 말이 많다. 서양에서는 덧니라고 하면 드라큘라를 연상하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고르고 하얀 이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남의 덧니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말이다.

사람의 매력

사람의 매력은 어디에서 느껴질까.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깔 웃었을 때 하얗고 고른 이가 반짝인다면 매력이겠다. 덧니도 나쁘지 않다. 보조개가 아닌 곰보자국 역시 매력일 수 있다. 웃을 수 있는 그 시간이 가장 매력적이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동생이 총각 때 일이니 좀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다. 그날 역시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도쿄의 자취방에는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캔 맥주와 센베이 과자를 몇 개 사서 가져다주었다. 누나가 들어오든 말든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오늘 만난 여자아이가 예쁘니 어쩌니 난리가 아니다. 그리고 한마디 “이가 하얗고 가지런한 걸 보니 곱게 자랐나봐.” ‘Yaeba-girl(덧니 걸)’이니 어쩌니 하는 일본 총각들도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면 일본 남자라고 모두가 다 ‘덧니 맹목주의’는 아닌 게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를 통해서 개인의 성장 과정을, 더 나아가 개인의 가치관까지 엿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